[아침뜨락] 강전섭 수필가·청주문화원장

박주가리는 흔한 덩굴성 잡초다. 긴 줄기로 농작물을 감고 해치는 식물이라 농부들이 제일 싫어한다. 덩굴이 보이는 족족 뽑아낸다. 하지만, 내가 사는 울안에 자라는 박주가리는 사랑받는 화초다. 창고 지붕 위로 뻗는 새순의 기세가 거침없다. 시계방향으로 휘감고 오르는 힘찬 생명력을 어찌하랴. 나에겐 차라리 이런 모습이 위안이 된다. 잡초의 그 당당함이 보기 좋다.

볼수록 정이 가는 식물이 박주가리다. 삐죽삐죽 올라오는 몽우리는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박새 새끼들의 주둥이 같다. 활짝 핀 연보랏빛 꽃잎은 수레바퀴살처럼 다섯 개로 갈라지며 뒤로 젖혀진다. 어찌 보면, 별 모양 같기도 하고, 뽀얀 솜털이 가득한 불가사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동살에 비친 꽃과 햇살이 투과된 이파리에 층층이 드러난 하트 모양의 잎맥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그래서 박주가리꽃과 잎사귀가 여느 들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어느 날인가 박주가리가 빨랫줄을 점령했다. 아내는 '잡초한테 빨랫줄을 내줬다'고 타박하지만,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이다. 네 갈래 빨랫줄을 타고 힘차게 뻗어가는 모습은 코로나로 지친 내게 삶의 활력을 준다. 표주박 모양의 길쭉한 열매는 표면에 두꺼비 등처럼 오돌토돌한 돌기가 있다. 열매가 마르고 속이 터지면 솜털 붙은 씨앗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씨앗이 모두 날아가 열린 껍질은 마치 쪼개진 박처럼 보인다. 그래서 '박쪼가리'라고 부르는가 보다. 찬바람이 휭휭 불 때마다 바싹 마른 빈 껍질이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마치 등 굽은 어머님의 고단한 삶의 신음 소리처럼 들린다.

궁핍했던 어린 시절의 그리운 정경들이 되살아난다. 홀로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샘물처럼 솟는다. 박주가리 열매가 잊고 살았던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린다. 모든 게 부족하고 귀했던 시절. 지금처럼 흔한 군것질거리도 없었고, 장난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달콤한 어린 목화 열매를 따 먹을 때쯤이었던가. 덜 익은 박주가리 열매를 따서 씨앗을 발라먹던 기억이 새롭다. 열매가 어찌 그리 달착지근하던지. 늦가을을 지나 익은 열매를 따 명주실 같은 씨앗의 솜털을 꺼내 입으로 훅훅 불어 허공에 날려 보냈다. 술래잡기하듯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씨앗들을 쫓아다니다 지치면 풀섶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눅잦혔다. 흰 갓털의 나풀거리던 군무가 눈앞에서 사라질 때쯤엔 저무는 석양빛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오늘도 박주가리는 비상을 꿈꾼다. 척박한 환경을 탓하거나 서두르는 법 없이 가을볕에 익어간다. 희로애락이 무시로 오가는 인간 세상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으련만. 오랜 기다림 끝에 때가 되면 둥지를 열고 바람결에 온몸을 맡긴 채 날아오른다. 새로운 삶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비상하는 박주가리의 도전이 부럽다. 나도 그런 박주가리처럼 당당하고 자유롭게 삶을 펼치고 싶다.

강전섭 수필가·청주문화원장
강전섭 수필가·청주문화원장

밤하늘의 별이 내려와 꽃이 된 추억어린 박주가리. 머잖아 하얀 비단옷을 입은 씨앗이 은빛 날개를 펴고 가을 속으로 멋지게 날아가리라. 나도 박주가리처럼 부질없는 욕망과 허물을 벗고 가볍게 가을 여행을 떠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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