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올해도 주말 농장에 배추 모종을 심었다. 작년에 배추 모종을 심는 시기를 놓쳐 실패했던 경험 덕분에 올해는 적기에 심었다. 배추 모종을 심는 시기를 맞추기는 했지만 초가을 장마로 배추 모종의 생장점이 녹아 내렸다. 배추 모종을 심은 후 뿌리가 내릴 때까지 생육 상태를 살피지 못해 벌레가 생장점을 갉아 먹었다. 주말 농장에 갈 때마다 잘 자라고 있는 다른 사람의 배추를 바라보는 내내 부러운 마음이 들어 속상했다.

얼마 전 103세 어머니와 70세 딸이 농촌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허리가 굽어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힘들게 농사일을 하는 딸이 안쓰럽다며 고추밭에 난 풀을 뽑는다. 몸살이 나 누워있는 딸에게 어머니는 약을 먹이기 전에 속을 보호해야 한다며 찬물에 밥을 말아 먹여준다. 어머니의 표정은 해맑고 온화하게 보였지만 아픈 딸의 등을 토닥여주며 불러주는 자장가에는 어머니의 애타는 마음이 묻어났다. 어머니는 딸에게 아프지 말라며 사랑하는 마음을 전했고, 딸은 10년만 더 함께 살자며 감사한 마음으로 화답했다. 103세 어머니의 마음은 딸에게 향해 있고, 70세 딸의 마음은 어머니에게 다가가 있다.

최근에 85세 어머니와 미혼인 50세 딸이 함께 살고 있는 지인의 소식을 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딸은 지금껏 경제활동을 해 본적이 없고 부모에게 의존하며 살고 있다. 언젠가 딸이 약국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고생하는 딸이 애달프다며 어머니가 일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무의식속에는 딸의 독립이 불편하여 딸의 독립을 방해하는 심리가 작동하고, 딸의 무의식속에는 어머니로부터의 자립이 두려워 자립을 원하지 않는 심리가 작동하여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굳어진 듯하다. 근래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어 몸져눕게 되면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게 됐단다. 한동안 어머니를 간호했던 딸이 병시중을 들지 못하겠다며 집을 나가 혼자 살겠다고 오빠에게 선전 포고를 했다고 한다. 85세 어머니의 마음은 자신에게 향해 있고, 50세 딸의 마음은 자신에게 다가가 있다.

사람은 어릴 적 부모와 경험했던 관계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전능함을 경험한 사람은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을 존중하고 공감하는 이타적인 마음이 작동한다. 반면에 부모의 사랑과 존중,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욕구만 충족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작동한다. 어릴 적 부모와의 애착 형성과 정서적인 친밀감의 경험도 관계를 맺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 103세 어머니와 70세 딸의 모녀 관계는 애착이 형성되어 정서적 친밀감이 두텁게 보였고, 85세 어머니와 50세 딸의 모녀 관계는 애착 형성이 되지 못해 정서적 친밀감이 얇게 느껴졌다. 관계 맺기 방식은 내면에 고착화된 습관처럼 반복되는 패턴으로 나타난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누구나 자신의 존재와 욕구를 인정받고 존중받기 원한다. 이런 욕구가 좌절되면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난하며 공격성을 촉발시켜 갈등을 유발하고 관계를 악화시킨다. 농작물이 성장하는데 날씨, 토양, 재배 기술이 중요하듯 사람은 사랑, 애정, 관심, 지지를 주고받으며 성숙한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성장 초기에 자양분이 결핍되면 살아가는 내내 부침을 겪게 되고, 관계 맺기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건강하고 돈독한 관계는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주고받는 성숙한 마음에서 싹튼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