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우리 집에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 나를 포함 여지들이 넷이나 되는 우리 집은 요즘 보기 힘든 여인천하(女人天下)다. 짝이 되는 남자들 중 누가 자기 아내에게 제일 잘하는지 키 재기라도 하듯 서로 등수를 매기며 경쟁 할 정도니 말이다. 수박 한통을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잘라 가지런히 과일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는 남자, 전기면 전기 기계면 기계 웬만한 건 너튜브로 독학해 맥가이버 손으로 다 해결 해 주는 남자. 아내와 아이들 무엇보다 가정을 우선순위에 두는 남자. 특히 더 잘하는 건 때마다 일마다 예쁜 꽃을 선물하는 다정한 로맨티스트 인 걸 말해 무엇 하랴.

바다가 보이는 호텔을 예약 해 놨으니 무조건 속초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늦은 밤 검푸른 동해바다의 찰싹거리는 소리와 설악이 만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딸깍 문을 열고 카드키를 꽂으니 침대 위 하얀 시트위에 핑크빛 카네이션 꽃다발이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누가 갖다 놓은 건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장인 장모님의 기도와 보살핌에 늘 감사드리며 사랑과 존경을 담아드립니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방 안에서 맞이할 수 있는 곳으로 어버이 날 깜짝 이벤트를 마련한 그의 세심함이 돋보였다.

그는 언제든지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네 개씩 준비한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구구절절 사연마다 귀함이 가득 묻어난다.

"우리 예쁜 솔이. 여덟 살 생일을 맞이해 아빠의 기쁨이 되어 주어 고마워. 사랑 해"

"우리 공주 솔이가 건강하게 여덟 해 생일을 맞이하게 된 것은 장모님의 따듯한 보살핌 덕분(德分)입니다. 사랑과 존경을 담은 폼폼 국화를 드립니다"

"오늘 솔이가 있기까지는 처제 덕분입니다. 이모의 헌신과 사랑 늘 고맙고 감사해요"

"엄마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 솔이가 이렇게 예쁘게 잘 자랄 수 있었을까? 여보! 사랑하고 고마워요"

딸내미 생일에 아내와 딸 그리고 처제와 장모님까지 해마다 네 개의 꽃다발에 진심이 가득 담긴 마음까지 따로 준비한다. 받는 사람 기분 좋게 하는 센스와 자상함이 돋보이는 꽃을 주는 멋진 남자가 우리 집 둘째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연애시절에도 때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꽃을 선물하던 그가 몇 년 동안 레지던트 전문의 과정을 공부하기위해 서울로 올라 간 적이 있었다. 그동안 다니던 꽃집, 미용실, 서점 등을 찾아 당분간 뵙지 못할 것이라는 인사를 일일이 하고 떠났다는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그의 됨됨이를 보는 것 같아 자못 미더웠다. '이렇듯 예의바르고 마음 따듯한 바른생활 사나이가 여기 있었구나.' 어느 구석에 숨겨져 잘 보이지 않던 빛나는 보석을 찾은 듯 마음이 훈훈해 졌다. 그는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는 통영의 작은 섬 목회자의 아들로 자랐다. 중고등학교가 없는 섬 소년은 일찍부터 부모를 떠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 해야만 하는 외로운 사춘기시절을 보냈을 게다. 힘들고 어려웠을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자녀를 향한 부모님의 눈물어린 기도와 가르침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지치고 낙망하여 힘들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인내로 현실을 극복했다. 숱한 시간이 가고 오는 동안 깍이고 다듬어져 부드럽고 자상한 포용력 있는 가장이 된 것이다.

"꽃처럼 고왔던 장모님. 따스한 마음과 사랑으로 당신의 딸을 길러주신 덕분에 우리 가족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아버님 어머님 사랑합니다" 꽃 한 송이에 눈이 가고 마음이 머무는 여인은 오늘도 그에게 또 꽃 선물을 받았다. 인생 후반전을 엮어가는 설렘과 기대에 넘실대며 밀려오는 파도처럼 마음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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