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노근호 충북과학기술혁신원장

2005년 '사이언스' 125주년 기념호 첫 장의 스페셜 이슈 제목은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 가?'였다. 125주년을 기념하여 125가지 질문에 대해 순위를 매겼다. '우주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의식의 생물학적 기제는 무엇인가?' 등이었다.

10년이 지난 2015년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표지 특집기사를 내면서 새로운 인류를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로 명명했다.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로 사용하는 신세대가 인류 표준으로 부상하면서 문명에 대한 관점 차이가 신·구세대 간 극명해지고 있다.

2016년은 인류에게 사고 대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준 해였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개막이 선언됐고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 2016'에서는 '혁신 이후의 혁신'이 기조연설 주제였다.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AI가 승리하면서 온 세상이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은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 등 이른바 '부카(VUCA)' 상황을 더욱 심화시켰다. 얼마 전 화이자의 최고경영자 앨버트 불라는 1년 이내에 우리가 정상적인 생활에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 이후 전망에 대해서는 '우린 정말 모른다. 데이터를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면서 얼버무렸다.

최근 외국 언론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오징어 게임'은 2008년 기획 당시 투자자나 배우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굉장히 낯설고 기괴하고 난해하다는 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살벌한 서바이벌 이야기가 어울리는 세상으로 변한 것이다. 이에 대해 황동혁 감독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짧게 정리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주요 증권사들의 올 3분기 상장사 경영 실적 전망치를 종합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49.3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은 '2021년 2분기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통해 외부감사 기업의 매출이 1년 전보다 18.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5년 이후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반면 얼마 전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내 자산총액 500억 원 이상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못 내는 한계기업 비중이 네 번째로 크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업종 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날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예측 불가능성'과 '불균등'으로 숱한 혼돈을 겪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거대하고 어려운 공식이나 이론들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세상 대부분 원리라는 점이다.

뇌과학자인 KAIST 김대수 교수는 '뇌 과학이 인생에 필요한 순간'이라는 책을 통해 인생 최고의 뇌 과학 질문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사라지는데 이는 뇌를 의심하지 않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착각에 빠져버린 결과라고 진단한다. 대상에 대한 미미한 지식일지라도 뇌가 '안다는 느낌'을 만드는 까닭이다. 안다는 느낌이 알아갈 기회를 막는 셈이다.

노근호 청주대학교 산학취창업본부장
노근호 충북과학기술혁신원장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부부 개발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는 저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신중하게 살피고, 복잡성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인식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첩경임을 강조한다.

지금의 '부카(VUCA)' 상황 극복을 위해서는 먼저 '아는 느낌'을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호기심을 자극해서 창의력을 강화하는 훈련도 요구된다. 창의성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본 소양이다. 현재의 역경에서 배운 지혜를 발전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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