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비 오는 날은 으레 엉덩이를 들썩인다. 그러다가 결국은 드라이브를 하고 만다. 젊은 시절 남편이 비 오는 날 드라이브하는 취미를 두고 핀잔을 주곤 했던 내가 지금은 취미를 넘어서 습관이 됐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이 있을 땐 강추위가 심술을 부려도, 작달비가 가로막아도 추풍령 휴게소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냥 지나치면 마치 엄마를 배신하는 것 같은 느낌이 올 정도로 생활의 일부가 됐다. 나도 모르게 핸들을 추풍령 휴게소로 돌린다. 다행히 바람은 없지만 공기 입자들이 꽤 날카로운 삼월삼짇날이다. 오늘처럼 날씨가 냉정한 날은 따뜻한 커피 잔을 들고 황악산 허리춤을 두르고 있는 하얀 구름 띠를 만나기 위해 휴게소 구름다리계단을 오른다. 멀리 산들은 어김없이 친정엄마 영상을 피어 올린다. 커피 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한삼자락은 어머니를 부르는 주술 같다.

내가 대여섯 살 정도 되었을 때다. 어머니가 앞치마를 벗고 반짇고리와 양말 보따리를 들면 이미 동생과 나는 방 가운데 불그레한 전등 아래에 자리 잡는다. 재질이 좋지 못한 탓인지 두 켤레씩 겹쳐 신는 구남매의 구멍 난 양말은 어찌나 많은지 매일 밤 꿰매도 수북하게 쌓인다. 양말 속에 전구를 넣고 바늘귀에 실을 꿰고 나면 엄마는 이야기 샘이니까 그냥 두레박으로 물 퍼 올리듯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낮에는 듣지 못했던 칙칙폭폭 기차소리가 드문드문 배경음이 되기도 했다.

우리 동네 금릉군 봉산면 면소재지와 추풍령고개와의 거리는 모른다. 하지만 밤에만 들을 수 있는 기차소리가 좀 이상했다. 그 이상한 기차소리의 수수깨끼를 풀고 싶어서 어느 날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무이예, 기차가 칙칙폭폭 계속 가면 되는데 왜 가다가 말고 짜르르 합니꺼?"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대답이 참 서정성이 짙은 감각이셨다. "엄마는 니 하나만 업고도 힘들어서 휴우 하는데 기차는 그 많은 사람들을 품고 추풍령을 넘을라 캐봐라 얼마나 힘들겠노, 안 미끄러질라꼬 용쓰는 기라."

당시는 증기기관차라서 힘이 모자랐나보다. 잘 나가던 칙칙폭폭 소리가 짜르르 하고 미끄러지는 소리가 난 다음에는 느리게 치익 치익 포옥 포옥 힘들어하는 소리였다. 어릴 적부터 역마살의 끼가 있었을까 기차소리는 늘 예사롭게 들리지 않고 설렘이며 그리움이요 타고 싶은 소원이었다.

드디어 소원성취 하는 날이 왔다. 오빠랑 김천서 열차를 타고 대구를 가는데 내가 발을 바닥에 내리지 않고 들고 앉아 있으니까 오빠가 "니 와그라노?" 하면서 다리를 내리라고 했다. "기차가 무거울까봐 그란다 와." 했더니 어이없다는 듯 창피하다고 내 다리를 꾹 눌러버렸다. 집에 오자마자 온 식구들 앞에서 기차 무겁다고 발 들고 앉아있던 이야기를 해버려서 한바탕 웃음거리로 끝나면 좋겠는데 '바보자야'로 놀림감이 됐다.

그동안 세월은 강산이 일곱 번이나 변했지만 기차가 용쓰는 소리와 어머니의 양말 꾸러미는 내 가슴에 그리움으로 자리 잡고 해가 거듭 할수록 진하게 다가온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그렇게 향수가 되어 내 가슴에 자리 잡은 추풍령고개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거다. 추풍령에 들리지 않고 지나쳐 온 날 밤엔 기차의 용쓰는 소리와 울 엄마의 반짇고리를 상상하다가 잠이 든다. 가족들 뒷바라지가 어찌 양말뿐이랴 오빠들은 툭하면 교복 단추를 잃어버려서 아침시간에 엄마는 곤욕을 치루셨다. 아침이면 대가족 식사준비만으로도 버거운데 오빠들 도시락은 한두 개가 아닌 것을 혼자서 다 감당하셨다.

그리움이란 내가 무언가 부족할 때 생기는 기다림이라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나의 그리움은 미안함 때문이지 싶다. 내 가슴은 애절함이 없고 그리움도 없는 메마른 가슴인 줄 알았다. 가슴도 나이를 먹나보다. 오늘도 꽤 날카로운 날이지만 추풍령 휴게소 구름다리 위에서 기차 용쓰는 소리와 엄마가 그리워 한참을 서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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