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현 칼럼] 한기현 논설고문

한글은 창제 역사와 제자 원리, 특징 등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문자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7천여 개에 이르지만 문자는 30여 개에 불과할 정도로 고유 문자를 사용하는 민족이 많지 않다. 대표적인 문자인 영어와 한자는 기원전 1천500년 경에 만들어진 페니키아 문자와 갑골문자에서 진화했다. 고유 문자가 없는 나라는 남의 문자를 빌려쓰거나 변형해 사용한다. 2008년 인도네시아 소수 민족인 찌아찌아 부족이 한글을 고유 문자로 채택해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올해 창제 575돌을 맞은 한글은 다른 문자와 달리 유일하게 발음기관을 본 따 만든 소리문자다. 특히 문자의 모양에 소리 특성까지 담은 가장 진화된 자질문자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자음과 모음 24자만 배우면 어떤 소리의 표현도 가능하다. 새 소리, 개 짓는 소리는 물론 바람 소리, 닭이나 새가 날개를 벌리고 탁탁 치는 소리 등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다.

한글은 또 모음이 5개에 불과한 로마자보다 표현 능력이 뛰어나다. 600여 년전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배울 수 있고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과 뚯이 통한다고 훈민정음을 소개했다. 대학 어학당에서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어 이르면 하루, 늦어도 2주면 앍고 쓸 수 있다고 한글의 장점을 들었다.

하지만 세계 어느나라 문자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 한글은 장점인 표현력에 비해 띄어쓰기, 사이시옷, 외래어 표기법 등 한글 맞춤법 규정이 복잡하고 예외 조항이 많아 SNS 위주 국민 생활에 맞게 어법을 단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사람인'이 구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절반이 자기 소개서 작성시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한글 표기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문법을 지키지 않는 메신저 소통, 평소 글을 자주 쓰지 않아서, 독서 부족, 음성과 영상 소통 익숙 등 순으로 답했다.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한글날 기념해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글 인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5%가 띄어쓰기에 어려움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들도 배울 수록 매력이 많은 한글이지만 변화형이 많고 어문 규정이 헷갈려 글을 쓸 때마다 국어사전을 찾아본다고 공감했다.

한기현 국장대우겸 진천·증평주재
한기현 논설고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행 띄어쓰기 규정이 국어를 망친다"고 주장했다.그는 "자신도 글을 쓸 때 띄어쓰기가 자신없다"며 그 예로 돼지고기와 쇠고기는 붙여 쓰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멧돼지 고기와 토끼 고기를 띄어 써야 한다고 들었다.

현행 한글 맞춤법 개정안은 개정된 지 30년이 지난 데다 국어학자, 국문과 교수, 국어 교사, 학원 강사 등 국민이 아닌 한글 전문가들을 위한 특별 규정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는 영어처럼 띄어쓰기를 단순화하고 예외 규정을 정리하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한글 맞춤법 규정을 과감히 고쳐야 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