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 며칠 전 의미 있는 어린이 음악극을 보고 왔다.

지난봄에 대본 의뢰를 받았다. 몇 번 뮤지컬 대본을 써 본 경험은 있지만 소심한 성격인 난 늘 망설인다. 그때도 나를 믿고 연락을 준 것이 고마운데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았다. 마침 작년에 뮤지컬 대본을 쓰지 않아서 올해는 한번 써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던 터라 생각 끝에 쓰기로 결정했다.

어떤 내용으로 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만남의 장소로 가고 있었다. 그때 당시 어느 정도 다 써놓았던 동화 한 편이 있었다. 세 명의 마녀가 공주로 변신해 일어나는 이야기였다.

평소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마녀와 공주 이야기를 꾸며 들려주곤 했다. 반응이 좋아 아이들이 계속 해달라고 했고, 그래서 세 명의 마녀와 공주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동화였다.

마침 동화를 다 쓰고 출판사와의 인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 동화를 바탕으로 음악극 대본을 쓰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음악극 공연을 준비하는 분도 세 명이 한 팀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분들도 신기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순조롭게 작업 이야기는 이루어졌다.

며칠 밤 난 세 마녀와 공주가 되어가며 즐겁게 대본을 쓰고 작사도 했다. 노랫말을 쓸 때는 나름 흥얼흥얼 거리며 쓴다. 그러면서 나 혼자 웃고 때론 슬픔에 빠진다.

다 완성된 대본은 늘 부족함이 묻어있다. 하지만 늘 좋은 작업자를 만나면서 부족함은 꽉 채움으로 반짝인다.

이번 크로스오버 성악가 그룹 '아이리스'와 함께하는 어린이 음악극, '세 마녀의 결혼 대작전'도 그랬다. 부족한 부분을 오히려 더 눈부시게 빛나게 만들어 주었다. 공주로 변신한 세 마녀의 좌충우돌 결혼 대작전 이야기가 관람객의 마음을 몽땅 훔치기에 충분했다.

공연을 보면서 나 또한 웃음이 나고 울컥하기도 했다. 무대 뒤에서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출연진과 천사표인 작곡자 박대웅 선생님도 참 보기 좋았다. 꼭 가족 같다고나 할까?

내가 아는 아이들도 와서 꽃 선물도 받고 사진도 찍었다. 또 언제 공연하냐고, 다음엔 다른 친구들이랑 함께 오고 싶단다. 그리고 백설 공주가 좋아한다는 충주사과가 자랑스럽고 자신도 좋아한다며 깔깔 웃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자와 사진 찍는 시간이 있었다. 주인공 세 마녀들은 인기 만점이라 줄을 서 있다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대본 쓰기를 정말 잘했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누군가 또 대본을 써 달라고 한다면 또 망설이겠지만 이런 모습들 때문에 자석에 이끌리듯 털커덕 "써 볼게요."라고 말할 것 같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세 마녀의 결혼 대작전' 음악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됐다. 다들 착해서 때 묻은 난 지우개로 싹싹 뽀드득 지워야 할 상황이다. 마음과 마음이 합한 공연이라 그들과 헤어질 땐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었는지 모른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 밤. 좋은 공연과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은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하다. 살아가면서 자꾸 자꾸 꺼내 보고 싶은 선물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뽀얀 먼지가 앉더라도 호호~ 입김 불면 다시 맑게 보이는 인생의 값진 선물. 올 가을 그런 선물을 가진 난 정말 축복받은 자임에 틀림없다. 정말 기쁘고 감사한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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