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일주 공주문화원장·공주대 명예교수

2021년 11월 7일 13시59분 입동(立冬)이다

들 입(入), 겨울 동(冬)이니 겨울이 시작된다는 때라는 말이다. 풍성한 가을걷이를 채 마치기 전이니 바쁜 일손 놓고 한 숨 돌릴 새 없이 겨울의 길목에 들어선 것이다.

입동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을 지나고 약 15일, 그리고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의 약 15일 전에 드니, 이제는 더 추울 날이 온다는 예고이기도 하다.

곱게 차려 입었던 단풍들은 유감없이 화려한 자태를 모두 내려놓고,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굴을 파서 땅 속으로 숨어들기 시작한다.

입동날씨점을 보았다는 제주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겨울바람이 독하다고 했다고 한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입동에는 비가 온다니 날씨가 따뜻할 것 같다.

겨울 내내 혹독한 추위는 안 오면 좋겠다. 날씨가 추우면 왠지 마음도 쓸쓸해질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입동이 되면 마을에서는 동계를 열어 온 마을 사람들이 상부상조하면서 한 해를 잘 지냈음에 서로를 격려하고 감사를 나누며, 경로 행사로 효행의 미덕을 자손에게 본보였다.

추수를 모두 마친 뒤에는 각 문중에서도 햅쌀과 오곡백과로 차려낸 제물을 올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들께 감사의 시제를 올렸다.

각각의 서원에서도 형식은 다르더라도 마을마다, 가정마다 숭조돈목(崇祖敦睦)하는 마음가짐은 같았다.

그러니 입동철은 곧 감사절(感謝節)이요, 이웃 간에 따뜻한 정을 나누는 화합과 친목의 시기이다.

가정에서는 한여름에 파종해 심고 정성들여 기른 무와 배추로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도란도란 정담 나누며 담근 김장김치를 골고루 나눈다.

이런 덕행(德行)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내려온다. 지난주에 공주 음식인 깍두기를 주제로 한 축제가 있었는데, 뜻있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만든 깍두기를 많은 분들과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니 입동철에는 음식만이 아니라 서로 가진 지혜도 나누고, 지역마다 내려오는 좋은 미풍과 훌륭한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계유산도시 공주에서는 충청남도, 공주시 단위에서 주관하는 문화행사 뿐만 아니라 문화원과 문화재단, 예총, 민예총은 물론 여러 읍, 면, 동과 많은 문화예술단체에서도 앞 다투듯 매일같이, 어디에서 무슨 행사가 열리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풍성한 문화예술의 대잔치가 열리고 있다.

1500년 전 화려했던 웅진백제의 수도였고, 300년간 충청의 수부도시였던 공주는 세계유산도시이며 문향(文鄕), 예향(藝鄕)이며, 변함없는 교육도시이다.

공주에서는 행정수도 세종특별자치시와 연계하는 문화수도로서의 지역정체성(local identity)을 확립하기 위해 공주시를 중심으로 모든 시민, 문화, 예술단체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하고 있다.

24절기 중 열아홉 번째인 입동이 지나 소설, 대설을 거쳐 12월 22일이 되면 동지(冬至)를 맞게 된다.

이일주 공주문화원장·공주대 명예교수
이일주 공주문화원장·공주대 명예교수

그 때까지 기온은 점점 내려가고 어두운 시간이 길어지겠지만, 춥고 어둡다고 모두가 움츠리는 것은 아니다. 입동을 지나면서 떨어지는 낙엽이 또 내년에 날 새 잎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주듯, 풍성했던 문화, 예술 활동은 이제 또 내년의 풍요로운 문화도시 공주 발전의 새로운 기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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