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지난 11월 12일은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인 임종국 선생 32주기가 되는 매우 뜻 깊은 날이다. 천안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과 유족, 천안 시민, 천안시의회 김월영 시의원,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이용길 회장 등 40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해 임종국 선생의 올곧은 역사의식과 친일 적폐 청산 의지를 기렸다.

임종국(林鍾國, 1929~1989) 선생은 경남 창녕 출생의 시인, 비평가, 사학자이다. 그는 1952년 고려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1959년 '문학예술'지에 시 '비(碑)'를 발표해 등단했고, 1960년에 '사화집(祠華集)' 동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불평등한 한일관계의 구조적 원인을 해명하고 민족 내부의 자성을 촉구하고자 1949년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파 연구에 착수했다. 임종국 선생은 우선 먼저 천도교 지도자였던 부친 임문호(林文虎)와 스승 유진오(兪鎭午)의 친일 행적까지 고발하고, 1966년에 '친일문학론'과 '이상전집'을 발간해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 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1970년 선문출판사에서 '발가벗고 온 총독'을, 1974년 정음사에서 '한국문학의 사회사'를, 1978년 평화출판사에서 '취한(醉漢)들의 배'를 발간했다.

임종국 선생은 1980년대 초반, 친일문제를 본격적으로 조사·연구하기 위해 서울에서 천안으로 내려와 삼룡동과 구성동에서 타계할 때까지 10년간 친일문제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한국사회풍속야사', '정신대 실록', '일제침략과 친일파등 9권의 친일연구 전문서적을 발간해 천안을 친일연구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임종국 선생은 후학들과 함께 방대한 규모의 '친일파총서' 집필에 착수했지만 폐기종으로 건강이 악화돼 1989년 11월 12일 만 60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그의 시신은 천안공원묘원 무학지구에 안장됐다. 임종국 선생이 남긴 선비 정신과 저서, 방대한 자료는 후학들이 고인의 유업을 잇기 위해 힘을 모아 1991년에 설립한 민족문제연구소로 그대로 계승 발전되고 있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임종국 선생 사후 3년만인 1992년에 그의 주요 저서인 '친일문학론'과 '일제침략과 친일파'가 제6회 심산상 수상도서로 선정됐다. 2005년 10월 15일에는 정부가 임종국 선생의 친일연구 업적을 인정해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임종국 선생은 생존 시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어록을 남겨 후배 역사학자들에게 많은 교훈이 되고 있다. "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 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2005년 3월 29일 출범한 임종국선생 기념사업회는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자 그해 11월 11일부터 '임종국상'을 수여하고 있다.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와 임종국 선생 조형물 건립추진위원회는 2016년 11월 13일 천안 평화공원에 '임종국 선생 조형물'을 건립했고, 지금은 해방 후 왜곡되고 굴절된 근현대사를 제대로 바로잡고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임종국 선생이 1988년 요산재에서 내려와 1989년 타계할 때까지 1년여 동안 거주하던 천안시 구성동 옛 단독주택에 임종국 선생의 발자취와 그의 뜻을 담은 작은 도서관 형태의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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