適地適作 원칙 고수… '부농 꽃길' 걷는 꽃농부

이정일 대표
이정일 대표

[중부매일 송창희 기자] 진천의 화훼는 줄기가 길고 꽃도 탐스러워 오래 전부터 전국 최고의 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화훼농가가 밀집해 있는 진천군 이월면 내기길 57(삼용리)에서 명품 장미의 계보를 잇는 튤립, 수국, 작약 재배로 진천 화훼산업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있는 '월드플라워컴퍼니' 이정일(55) 대표. 그는 1년 365일 화훼시장의 수요에 맞춰 다양한 꽃을 생산해 내며 서울 화훼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상자재배 공장형 화훼농장'을 구축해 신개념의 화훼산업을 이끌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편집자

 

생산비 절감위해 도전 또 도전

농대 원예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부터 15년간 서울 화훼종묘회사에서 국내외를 넘나들며 화훼구근류, 종자류 수입판매, 절화 수출, 로얄티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던 이정일 대표는 2007년 직접 꽃농사를 짓기 위해 진천으로 귀농했다.

'월드플라워컴퍼니' 튤립
'월드플라워컴퍼니' 튤립

고향인 경북 예천은 물론 충남 서산, 강원도 문막, 경기도 고양, 전남 강진 등을 돌아보며 자신이 생각한 화훼산업을 구상해 봤지만 시설 임대가 용이하고 서울에서 1시간 거리인 진천이 제격이라는 판단에 진천 이월면에 자리잡게 됐다.

난방비 등 생산원가가 너무 많이 들어 수지 맞추기가 어려운 한국 화훼농업의 방식을 바꾸기로 결심한 이 대표는 회사 근무 시절 외국 출장 중에 만난 노지 재배에 도전했다. '적지적작(適地適作)'. 어떤 작물을 그 작물이 자라기에 알맞은 땅에 심고 가꾸기. 이것이 그가 매달린 '이정일표 화훼산업의 핵심'이다.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 적합한 꽃을 심어 생산원가를 줄이기로 마음 먹은 그는 하우스용 장미와 백합 대신 노지용 작약과 불두화를 심었다. 그래야만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지에서 월동이 가능한 숙근성 다년초 꽃인 아스클레피아스, 베로니카, 할미꽃, 원추리, 옥잠화 재배를 시도했다. 그리고 매년 포기 수가 늘어나는 정원식물 100여 가지의 씨앗을 뿌렸다.

그러나 "된다!"고 믿으며 의욕적으로 시도한 결과는 실패였다. 여름을 이기지 못하고 꽃들이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토양 환경을 몰랐던 것이 원인이었다. 이 대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실험에 실험을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자 실마리가 풀렸다. "나는 사계절 모두 생산하자"는 의지를 다시 다지며 저장기술, 생산온도, 토양 실험을 계속해 연중 생산에 도전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기술력을 확립하고 출하 수량도 늘리게 됐다. 2017년에는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했던 동절기 작약 절화재배 실용화에 성공해 큰 주목을 받았다.

 

매년 농장 면적 10%는 새 품목 실험

이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월드플라워컴퍼니는 1년 사계절 다양한 꽃을 생산하는 '상자재배 공장형 화훼농장'으로 유명하다. 히야신스는 시장 포화로, 샌더소니아는 가격 하락으로 중단했고, 현재 주력 화훼는 튤립이다. 사각박스에 부엽토를 넣고 튤립 구근을 식재한 뒤 싹을 틔워 영하 1도에서 보관한 후 시장 수요에 맞게 출하를 조절하고 있다. 상자재배를 통한 절화 재배법을 실용화해 맞춤형으로 생산하다보니 무작정 꽃을 출하했다가 시장의 수요와 맞지않아 낭패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싹 틔운 튤립 구근을 영하 1도에서 보관해 출하 시기와 물량을 조절하고 있는 창고 모습. /송창희
싹 틔운 튤립 구근을 영하 1도에서 보관해 출하 시기와 물량을 조절하고 있는 창고 모습. /송창희

이 시스템은 5천개 출하를 2만개, 5만개, 10만개로 늘려줬고, 고소득 작물로의 전환과 함께 기술 재투자라는 여력을 안겨줬다. 이 대표는 매년 농장 면적의 10%는 화훼시장의 트랜드를 읽는 새로운 품종 재배에 할애하고 있다. 은방울꽃, 샌더소니아, 클레마티스 등이 현재의 주력 품종을 이을 다음 타자들이다.

 

한발 앞선 시장 트랜드 읽기에 집중

"소비자가 원하면 이유가 없는 거죠. 내가 편한대로 생산하는 것은 당연히 실패입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꽃을 정확하게 시장에 내놓는 것, 그것이 화훼산업의 기본이자 성공비결 입니다. 저의 경쟁상대는 우리나라 화훼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수입꽃을 키워내는 전세계 농민입니다."

'월드플라워컴퍼니' 튤립
'월드플라워컴퍼니' 튤립

이 대표는 서울 꽃도매시장을 돌아보며 도매상과 꽃꽂이 강사들이 말하는 화훼품종 흐름에 귀 기울이고 있다. 최일선 현장에서 소비자를 상대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최신의 정보라고 믿기 때문이다.

화훼종묘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2007년 진천 이월면에서 화훼산업에 뛰어든 이정일 대표의 '월드플라워컴퍼니'. 서울 화훼시장으로의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 2주일 분량의 튤립들. 그 양이 놀랍다. /송창희
화훼종묘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2007년 진천 이월면에서 화훼산업에 뛰어든 이정일 대표의 '월드플라워컴퍼니'. 서울 화훼시장으로의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 2주일 분량의 튤립들. 그 양이 놀랍다. /송창희

사업초기에는 10개를 시도하면 2개를 성공했지만, 지금은 10개를 시도하면 8개의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재배기술과 생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젠 시장이 원하는 아이템을 들으면 상품화해 낼 수 있는 자신감도 얻었다. 2023년에는 연 300만개 생산시설을 갖추고 이에 도전할 계획이다.
 

급여 받는 선진국형 원예치료 도전

이 대표는 2019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선정 '지역혁신가'로 선정 됐으며, 농업대학, 귀농귀촌과정, 화훼마이스터과정 등의 특강을 통해 자신의 화훼농업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대표가 부인 조수형 씨와 함께 꿈꾸고 있는 것은 원예치료, 치유농업이다. 이들 부부는 농장을 시작 때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진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하는 교육 등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이 대표가 구상하고 있는 원예치료는 이벤트성 치료를 넘어 재배·수확 등의 단순한 노동에 참여하면서 소정의 급여를 받는 체류형 원예치료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이 사회에 기여한다는 보람과 자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것은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종묘회사 근무를 거쳐 현장에서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피워낸 그의 원예인생 30여년을 결산하는 사회공헌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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