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손주가 종이박스에 들어앉아 웃고 있다. 해맑은 미소에 눈이 부시다. 아이도 택배로 보내온 선물처럼 누군가의 선물이 되고 싶은가. 박스를 보니 21세기는 배달의 시대인 것 같다. 코로나로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져 인터넷 주문이 더욱 늘어난 탓일까. 인간의 손과 발로 옮길 수 있는 물상은 무엇이든 택배로 가능하리라. 의식주 중 덩치 큰 집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의복과 음식은 주문하기 무섭게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품에 안긴다. 택배 천국이 아닐 수 없다.

택배의 위력은 대단하다. 인간의 탄생을 장난감쯤으로 여기는가. 손녀는 택배기사가 오토바이에 태워 동생을 데려올 거라고 말하여 웃음보를 터트린 적 있다. 아이의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택배기사가 모든 걸 가져다주는 사람, 신적 존재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인간을 종이 상자에 포장하여 택배로 전달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상이 현실로 일어나는 일,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멈춘다.

택배는 속도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간편하고 빠른 이동 수단에 택배만 한 것이 또 있으랴. 새벽에 음식 재료나 반조리 식품을 주문하면, 저녁에 우렁각시처럼 현관 앞에 가져다 놓는다. 주부들이 이제는 마트를 가거나 상점에 갈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 장애 없이 물건을 주문하면, 얼굴 없는 택배가 다녀간다. 모든 것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원하는 대상을 빠르게 얻었을 때의 감정은 어떠한가. 인터넷상에서 물건을 주고받는 감정 없는 행위를 반복하며, 인간은 속도에 비례하여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

새벽녘 부엌에서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어머니의 손에서 어떤 음식이 요리되어 밥상에 오를까 궁금해하며 밥때를 기다리던 유년 시절이다. 텃밭에서 손수 기른 푸성귀를 뜯어 새콤달콤하게 무친 겉절이에 밥을 비벼 주시던 시절을 생각하면 입안에 절로 군침이 돈다. 자매들이 양푼 앞에 머리를 마주하고 마지막 한 수저까지 감질나게 비빔밥을 먹었던 그 시절. 마치 망각의 강을 건넌 듯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아쉽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인간의 감정에서 기다림이 사라지고 있다. 밥상에서 어머니의 음식을 기다리는 일. 퇴근 무렵 아버지가 자전거에 매달고 올 초코파이를 반기던 시절. 기다림은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상이든 가벼운 흥분을 일으킨다.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듯 막연한 기다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거침없이 내딛는 속도에 감정의 한 부분이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만이 그걸 모르고 속도에 묻혀 질주하고 있다. '회귀본능,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세상'이라는 철학자의 말이 위안이 된다. 저물녘 따스한 정을 낳는 밥 뜸을 들이며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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