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자연스러운 자연을 만나다… 8명 작가 '공존의 미학' 탐구

2021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그린스펙트럼Ⅱ' 전시회 포스터.
2021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그린스펙트럼Ⅱ' 전시회 포스터.

[중부매일 이병인 기자] ㈔한국자연미술가협회-야투는 2021년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의 성과보고전을 지난 11월 6일을 시작으로 오는 30일까지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서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그린스펙트럼(Green Spectrum)'의 주제로 펼친 이번 성과보고전에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의 미학을 탐구하는 자연미술과 함께 초록색이 가지는 중립성과 다양성을 담았다.

참여작가는 강내희, 고요한, 고재선, 김혜식, 안치수, 이정은, 임혜옥, 전일국으로 총 8명이다.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에서는 초대작가들의 작품 연구 및 전시활동 외에 지역사회 주민들과 소통하는 오픈스튜디오와 다양한 교류활동, 그리고 어린이 및 학생들과의 교육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편집자

강내희 작가 '초록의 나라로(An Entrance to a Wonderland)'

오늘 초록에 목마른 이들을 위한 일상의 탈출구를 제공하려 한다.

입구가 되는 아치형의 틀을 세우고 버려진 포장용기에 시멘트와 황토를 붓고 그 위에 자연물을 압착시킨 복제물로 장식하였다.

강내희 作 '초록의 나라로(An Entrance to a Wonderland)'
강내희 作 '초록의 나라로(An Entrance to a Wonderland)'

압착된 자연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썩어 사라질 테지만 그 흔적은 영원히 남아 초록이 가득한 곳으로 여러분을 인도할 것이다.

자연의 나라, 이 문을 통과해 자연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오롯이 푸르름을 느끼며 편안함과 휴식을 안겨주고자 한다.

마치 앨리스가 작은 문을 넘어 놀라운 모험을 한 것처럼.
 

고요한 작가 '억새풀 숲 (Silver Grass Field)'

끝없이 펼쳐진 억새풀 숲 속에 나는 덩그러니 혼자 서있었다. 멧돼지와 고라니의 똥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다른 동물들의 흔적들이 보였다. 억새풀들 속으로 더 깊이 향했다. 빼곡히 자라난 3~4미터 높이의 억새풀들을 마주한 나는 경이로움을 넘어 스산한 공포심마저 들었다. 그러다 문뜩 '동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억새풀 숲 안의 느낌은 어떠할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나는 한 마리 동물이 되어 억새풀 숲을 헤쳐나갔다. 울창한 억새풀들은 나의 몸과 발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긴장감으로 발을 내딛으며, 풀잎이 스치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숲의 적막을 깨웠다.

나는 짧은 모험을 마치고 숲을 빠져나왔다. 하늘에서 바라본 그곳은 고요하고 부드러웠다.

 

고재선 작가 '공존의 시간, 초대 (Time of Coexistence, Invitation)'


풍경이 있는 조각을 컨셉으로 주로 작업을 한다. 연미산 전시에서 공주의 상징 동물인 곰과 나무를 결합하여 하나의 형태로 표현하였다. 흙으로 작업을 하는데 그 결합 공간을 부조가 아닌 입체의 형태로 조형화하고자 하였다. 입체에 부조의 개념으로 나무의 형태가 안쪽으로 작아지게 표현하여 공간의 두께를 표현하였다.

세월의 시간 속 공간이 하나가 된다. 결국 외부의 형태는 곰과 나무 중에 어느 것이 주가 되지 않고 공존하는 공간이 된다. 작업의 연속으로 가족과 자연의 연결을 표현하여 설치하였다.


 

김혜식 작가 '가시박 (Star Cucumber)'

나의 작업은 '새들목'이라는 이름을 가진 금강의 한 가운데 생겨난 퇴적섬에서 시작하였다.

가시박 풀은 나무들이 더이상 숨을 쉴 수가 없을 만큼 위협적이었으므로 푸른 숲을 점령하는 불온한 씨앗에 대해 새롭게 고찰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가시박 풀의 확산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다. 가시박 풀의 씨앗은 코비드-19 바이러스 균의 모양과 생김과 아주 닮아 있었으며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공격적이었다. 우리는 최근 위드-코로나(With Corona)를 선언하기로 하였으나 아주 불편한 타협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시박 덩굴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숲 앞에서 아주 작은 풀씨 하나는 코비드-19와 같은 공격자와 같다. 인간들도 역시 코로나-19 앞에서 항복했으므로 가시박 풀씨를 코비드-19로 해석하고 전시 형식을 빌려서 가시박 풀씨를 고발하기로 하였다.

표현방법으로는 가시박 풀을 채집한 후에 사진의 매체를 이용하여 사실적으로 촬영하였으며 촬영에 이용되었던 채집된 풀씨는 모빌로 작업하였다.


 

안치수 작가 'Timeless'

4억년 전 고대 물고기 실러캔스를 주제로 한 <Timeless>는 수억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기원이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4억년 간 거의 진화하지 않은 채 현재까지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이 기이한 생명체에 대한 발견은 20세기 고생물학계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평가받는다.

이 고대어는 양서류로 진화하기 전 육지와 바다를 오가는 고대어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육지생명 기원의 어느 지점에 있는 이 고대어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생명들에게 엄청난 시간의 간극을 살아오며 우리에게 놀라운 영감을 준다.

지상식물이 처음 등장한 선캄브리아시대에 지상에는 동물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중동물이 지상에 오르기 위한 도전을 할 때 그들 중 하나였던 이 고대어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린 스펙트럼은 우리에게 생명과 자연생태를 환기시킨다. 노랑과 파랑 사이에 위치한 그린 스펙트럼을 한 생명체가 대표해야 한다면 이 고대어를 내세우고 싶다.

 

이정은 작가 '<Biotope> 프로젝트 <Biotope> Project'

주변 환경 속에서 청각적으로 쉽게 감지되지 않는 존재와 움직임, 자연공간의 다양한 현상들을 물리적, 전자적 방법 들을 동원하여 소리로 변환하고 사운드 설치작업으로 구현하면서 미시적인 자연의 세계를 시각화, 음향화하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단지 자연물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이러한 자연물을 통한, 자연에 의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 작업은 과학 기술이 아닌 예술로서 의의를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생태계와 미생물의 세계, 그리고, 에코스피어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최소한의 작은 공간에서 밀봉된 채 생태계를 이루는, 관찰하지 않으면 인지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생물들을 큰 공간에 전시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가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이 작업의 목적이다.


 

임혜옥 작가 '천년의 시간 속으로-연미산에서 곰나루까지'

그린 스펙트럼의 주제를 생각하며, 생명의 모체로서의 연미산과 고마나루에 전해 오는 천년의 설화를 신화적 이미지로 표현할 방법을 모색해 보았다.

연미산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젖가슴, 어머니의 잉태한 배, 우리가 죽으면 돌아간다고 하는 잉태한 어머니의 자궁을 닮은 무덤의 형상을 보여줌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명의 근원이며 삶의 터전으로서의 연미산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싶었다. 아울러 생명 잉태의 신비로운 기운과 천년의 오랜 세월의 흐름을 어떻게 이미지로 묘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이번 작업을 구상하였다.

현대사진의 방법인 포토콜라주를 이용한 파노라마 형태의 작업을 통하여 연미산은 웅녀가 환생한 듯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명 잉태의 신비로운 푸른 빛을 더하고며, 초승달로 떠서 그믐달로 지는 달을 콜라주함으로 오랜 세월의 흐름을 이미지화하였다. 평면 사진 작업에 동적인 연출을 위하여 미디어 영상 작업을 하였다.

이번 작업을 통하여 아름다운 자연(웅녀)과 인간이 한마음으로 오래도록 공존과 상생을 거듭하기를 바란다.


 

전일국 작가 '보는 것'과 '보이는 것'과의 긴장을 풀고 세계와의 소통을 꿈꾸는 거울을 설치하며
(Installing a mirror that dreams of relaxing the tension between 'seeing' and 'seen' and communicating with the world).

나는 지난 40여 년간 설치와 행위예술을 주로 작업해오면서 설치작품의 주요 소재로 거울과 투명유리를 사용해왔다.

이는 인간의 시각을 통해 '보는 것'과 '보이는 것'과의 관계를 모티브 삼아 지각하는 주체로서의 '나'와 반사되는 '타자'의 시선과의 교차와 긴장 그리고 화해를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거울은 처음으로 나를 만나는 신비한 공간이다.

전일국 作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전일국 作 '보는 것'과 '보이는 것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되짚어보는 가운데 대상은 보는 이의 감정과 의지, 그리고 상상에 의해 포섭되는 동시에 확대되는 것이다.

나는 '보이는 자'의 대상으로서 내가 아닌 '자연'을 소환하고자 한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이중적 분열이 아닌 거울에 되비추어진 꽃과 나무, 숲의 바람, 새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까지 모든 것을 품어 안은 몸으로서의 시각이 지각하는 세계에서 거울은 모든 것과 교감할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 모두를 하나로 연결하여 보는 자와 보이는 자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보고 보이는 다양한 존재들의 시선을 상호교차하며 서로를 감싸 안으려 한다.

오래된 고목 안에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부여하고, 나는 그 눈을 통해 자연과 나를 함께 만나는 순간을 느껴보고 싶다.

이제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나와 세계와의 화해 속에 새로운 시선을 끊임없이 생성하며 우리를 멀리 숲이라는 자연으로, 우주로 열리게 할 것이다.
 

김홍정 소설가는 평론

야투자연미술은 서로 작용하는 생명현상의 근원을 찾아 미술작품으로 펼쳐내는 예술활동이다. 이런 활동을 금강 유역에서 심화된 인성과 물성의 관계를 찾는 탐색의 또 다른 모습이라 생각한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연미산자연미술공원

우연이라고 치부하기는 너무도 놀라운 자연미술 활동은 물성의 근원을 궁구하고 작동의 원리를 알고자 하는 성리학적 접근의 한 방편으로 여길 수도 있다.

더구나 이런 일련의 탐미적 활동이 금강 유역에서 비롯되었으나 점차 그 범주를 넓혀 대륙을 넘나들고 전 지구적 미술활동의 한 지평을 이루고 있으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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