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지인이 재판기록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갑작스런 방문이 조금은 난감했다. 마침 스케줄이 빡빡하기도 하거니와 이미 며칠 전 유선상 자문을 구하려 하여 정중히 거절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는 사건이어서 어설픈 견해를 밝혔다가 기존 변호사의 업무처리를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일부러 기록을 챙겨서 직접 찾아온 그의 간절함이 나를 자문에 응하게 만들었다. 잠깐 들어나 보자고 커피원두를 갈면서 지인의 설명을 들었다. 짧은 시간동안 "쉽게 말해서", "다시 정리하자면", "사실상" 등의 단어를 반복해가며 기초 사실관계나 저간의 소송진행 상황을 설명하였다.

사실관계에 많은 날짜와 많은 사건 관계인이 등장하였다. 언뜻 듣기에도 '쉽게 풀어서' '다시 정리'해서 말해야 할 만큼 복잡한 사실관계였다. '사실상'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법률상' 외관과 다른 사정이 있음을 시사했다. 기존 변호사는 제대로 이해 못해서 승소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고 했다면서 그에 관한 나의 의견을 물었다.

의견을 말해주기가 어려웠다. 사실 그 질문에 진지한 답을 해줄 의사는 애초에 없었다. 먼저 선임된 변호사님은 오랜 시간 진지하게 사건을 파악하여 재판을 진행했을 터였고, 그런 사건에 대해 짧은 시간에 두서없는 설명만 들었을 뿐인 내가 어쭙잖게 자문의견을 밝히는 것은 사건 진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내 의견이 그와 다르면 그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테고, 의견이 같으면 괜한 고생만 하게 된 것이니 기존 변호사님과 긴밀히 협조해서 풀어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상담료를 지불할 테니 꼭 답을 달라'고 하였다. 흔쾌히 자문해주지 않는 이유가 상담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였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함께 사건을 논의하거나 분업하는 변호사들이 여럿 있는 것이라면 몰라도 협업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변호사들의 의견을 각각 물어 소위 크로스 체크하는 것은 불신만 조장할 뿐 사건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나의 경우에 비추어도 의뢰인으로부터 '누가 그러던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는 말을 들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벌써 피곤하다.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비선 변호사가 개입되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비선 변호사는 영문도 모르고 호의로 답을 했다가 비선이라는 굴레를 쓰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럼 그쪽에서 하시라"고 말할 용기가 없는 나로서는 비선 변호사가 그렇게 답한 이유를 법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역으로 추측하여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관계가 무엇이었을 지까지 확인시켜줘야 한다. 대개는 이해를 하지만 간혹 비선의 견해를 존중하여 나를 떠난 의뢰인도 있다.

비선 변호사가 많을수록 사건종결에 이르는 시간은 길어지고, 결과는 나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여러 변호사로부터 무료상담을 받아 종합하여 본인 스스로 사건을 진행하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여러 주장이 모순관계에 있을 수도 있고, 각각의 법적 주장들이 합쳐져서 화학 반응처럼 전혀 다른 법률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절대로 피해야 할 변호사 사용법이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변호사

선임한 의뢰인을 위해서만 일하는 것, 그리고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다른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는 상황이면 법적인 견해를 가볍게 드러내지 않는 것은 내가 자본주의에 지나치게 충실해서가 아니다. 더더욱 변호사끼리의 동업자 정신의 발로도 아니다. 나에게 비선 변호사의 역할을 바랬던 바로 '그' 자신을 위한 것이다. 결국 그는 듣고 싶었던 대답을 듣지 못한 채로 돌아가야만 했다.

좋은 변호사는 자신이 신뢰하는 변호사다. 변호사를 믿지를 못하겠다면 애당초 선임하지 말아야 하고, 일단 선임했으면 최소한 심급의 결과를 받아들기 전까지는 신뢰하여야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본인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변호사보다 의뢰인이 들어야 할 말을 해주는 변호사를 찾기를 권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그런 변호사 사용법이 당신을 승소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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