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유혈진압 등 퇴임 후 수감
반대여론에 국가장 가능성 희박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사망한 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앞 전광판에 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사망한 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앞 전광판에 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중부매일 김홍민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향년 90세.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그는 알츠하이머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등 지병을 앓아오다가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졌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지난달 26일 12·12 군사 쿠데타 동지 관계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뒤 28일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취재진과 만나 고인이 회고록에서 '북녘땅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 그냥 백골로 남아 있고 싶다'고 남긴 내용이 사실상의 유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평소에도 가끔 '나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뿌려라'라고 말씀하셨고, 가족들은 유언에 따라 그대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인 이순자 씨도 전 전 대통령을 38선 근처에 안장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1931년 1월 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씨는 1955년 육사(11기)를 졸업한 뒤 무인(武人)으로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그는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같은 해 12월 12일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과 함께 정권 찬탈을 위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사 반란을 통해 정국을 장악한 그는 계엄령을 선포하며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 바람을 짓밟았고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같은 해 9월 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1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듬해에는 선거인단 간접선거를 통해 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재임 기간 한국프로야구 창설 등 스포츠와 문화 분야에 나름의 공을 들였다.

야간통행 금지 조치 해제와 학원 두발·복장 자율화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언론통폐합 조치와 삼청교육대 창설 등은 군부 독재 시기의 대표적인 '그늘'로 꼽힌다.

퇴임 뒤 5·18 유혈진압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1988년 재산 헌납을 선언하고 백담사에 칩거했다.

그러나 재산 헌납은 이행되지 않았다.

1996년 내란, 내란목적살인죄, 뇌물 수수 등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추징금 2천205억원이 선고됐다.

수감 2년 만인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5일간의 국가장으로 치러졌지만 전 씨의 경우 반대 여론이 거센 만큼 국가장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에 따라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순자 여사와 아들 재국·재용·재만 씨, 딸 효선 씨가 있다.

재용 씨 부인 배우 박상아 씨가 며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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