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김창식 충북과학고 수석교사

산은 각양각색의 나무가 어우러졌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소나무와 갈참나무와 층층나무와 자귀나무가 이웃해 공간을 주고받으며 자란다. 산나리와 엉겅퀴와 둥굴레와 가시를 품은 덩굴딸기도 같이 산다. 키 작아 갑갑한 마음으로도 손톱만 한 꽃잎을 꼿꼿하게 피운 제비꽃도 낮은 자세로 함께 산다. 저마다 인정머리 있는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다.

신춘문예 당선되고, 5권의 장편 대하소설도 출판하고, 올해 2021년에는 한국소설문학상도 거머쥐었다. 소설에서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을 행복하게도 했지만, 불행에서 처절하게 허덕이도록 잔인할 때가 더 많았다. 돌이켜 보면, 문학의 대주제가 사랑임을 알면서, 나는 왜 내 소설에서 사랑과 기쁨과 행복을 외면하고, 어둡고 슬프고 힘겨운 삶을 그렸을까.

이제부터 소설을 쓴다면 맑고 감동하며, 설렘과 환희를 만들고 싶다. 이런 깨달음이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에 서글프기도 하다. 문학도 아무튼, 각박한 세상일수록 인정머리 있어야 한다.

누군가, '어떤 여인이 가장 인정머리 있어 보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대답할 것이다. 한 아름의 생각을 젖먹이 아기처럼 가슴에 안고 눈빛이 선한 여인, 반듯한 지름길은 뭇사람을 위해 비워두고, 들풀 호젓한 곡선의 길에서 사색하며 웃음 짓는 여인이다.

김창식 충북과학고 수석교사
김창식 충북과학고 수석교사

아내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소설 집필에 몰두한 내게 방해가 될까, TV 볼륨도 줄이고 과일을 아주 천천히 깎아서 말없이 책상에 놓고, 다소곳이 묵도하는, 아내의 소박한 인정머리가 참 아름답다.

늦가을 볕이 참 좋다. 부딪는 눈빛마다 햇살을 튕겨내는 향기가 다져있다. 저마다의 가슴으로 또랑또랑한 꽃잎이 싱그럽다. 바람이 그 싱그러움으로 미끄러지며 가슴을 한 땀 꿰어간다. 볕이 고운 날 인정머리 넘치는 선한 눈빛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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