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이정현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올해도 어김없는 전화를 받는다. 김치담궈놨으니 주말에 들르라는 어머님의 전화. 무릎이 안 좋으신데 왜 고생하시면서 김장을 하냐고 하면, 꼭 이번이 마지막이고 내년부터는 사먹으라는 말씀을 하신다. 2~3년전부터 매년 반복된 통화내용인거 같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겨우내 먹을 김장을 한다. 직접 텃밭에 재배하기도 하고, 좋은 배추를 구입해 전날부터 소금물에 절이고 다시 씻어서 물을 빼고, 재료를 다듬는 등 힘든 작업으로 시작하고 김장날에는 무를 채썰고 갖가지 속재료를 버무려야 한다.

보통 김장은 자기가 먹을것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 가족을 생각해서 몇포기를 나눠줄지 결정하고 전체 양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웃끼리 날을 정해 돌아가며 '김장품앗이'를 한다. 이렇게 서로 돕는 김장에는 소통하고 정을 나누려는 공동체 정신이 담겨 있다. 예부터 내려온 김장문화가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도 가족과 이웃이 서로 정을 나누는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음식문화가 서구패턴으로 바뀌고, 소규모 가정이 많아지면서 김치소비가 줄어들고 있다. 재료값 상승 등 비용부담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김장 대신 포장김치 구매가 오히려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몇 년전 한 식품업체가 '김장 계획'을 묻는 조사에서 응답자의 54.9%가 김장을 하지않겠다고 선택했다.

이정현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이정현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하지만 김장 풍습이 사라지면서 깊은 역사와 전통, 나눔과 협동의 문화까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내년부터는 김장김치를 사먹으라고 하시는 어머님이, 내년 배추를 심을 텃밭을 임대했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결국 내년에도 맛있는 김장김치를 얻어 먹을수 있을거다. 내년에는 며칠을 휴가내어 어머님 대신 동네에 김장품앗이를 하고 돌아오면 어떨까? 서로의 마음을 채우고, 이웃과 따뜻한 온정도 함께 나누는 훈훈한 모습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