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12월 첫날 새벽, 거실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십이월'이라는 생각을 하니, 어느새 한 해가 다 지나갔나, 뭘 하며 살아왔나 하는 후회와 못다 한 일들이 생각나, 맘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가 한순간,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렇다, 살아온 날이 기적이다. 그 기적은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일어났다. 새해 이런저런 각오를 하고 시작은 했지만, 코로나다 뭐다 해서 갑갑하고 자신 없는 시작이었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데,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맡은 일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많았다.

우선, 법률가로서 많이 쓰임 받았다. 25년 전 개업 때와 같은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많은 분의 추천으로 여러 사람이 도움을 청했다. 평소 알던 선·후배 친구는 물론,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고교 동기로부터, 타지의 지인, 한 번도 대면한 바 없는 페이스북 친구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이 추천해 줬다. 맡은 사건들도 대부분 잘 처리되어서 신뢰받는 법무법인으로 인정받았다. 아무런 소개장도 없이 변호를 부탁하러 온 청년에게 누가 소개했느냐고 물으니, 주변 여러 곳에 물어봤는데 우리 법인이 가장 잘 처리한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했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그 사건은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더 열심히 돕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예전처럼 강연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한 기관에서 매월 1회 이상 법률강의 할 기회를 줘서 꾸준히 대면 또는 비대면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시작한 유튜브 '유재풍 변호사의 법률이야기'도 많은 이들이 찾아줘서 고맙다. 자치경찰제 출범과 함께 자치경찰위원으로 임명되어 법률가로서 지역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변호사로서 쓰임 받았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후배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이미 글로도 썼지만, 4월에 네 명의 후배로부터 받은 특별한 사랑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교 후배의 부활절 달걀 소식, 다른 교회 후배 장로의 중보기도, 중학 후배 화가의 손수 그려 만든 쿠션 선물, 외지에 사는 고교 후배의 의뢰인 추천 등. 7월 어느 주말과 주초 이틀 사이에는 기적 같은 사랑을 받았다. 평소 신세 진 선배님을 모시고 골프를 한 뒤 돌아오는 주말 오후, 한 후배가 복숭아 두 상자를 집에 보냈다는 배달직원의 메시지가 왔다. 고마워하며, 같은 경내(境內)에 있는 교회에 보내 직원들이 먹도록 했다. 그런데 조금 뒤 다른 후배가 복숭아 한 상자를 집에 두고 간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다음 날 아침 산책 중에 교회 후배가 조금 전 밭에서 딴 방울토마토 한 상자를 우리 집에 두고 왔다고 전화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날 오후, 라이온스 후배가 방금 딴 거라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옥수수 한 자루를 가져왔다. 불과 이틀 사이의 일이다. 어떤 뜨거운 여름날은 대학 후배가 옥수수를 쪄서 직원들 먹으라고 땀 흘리며 들고 오기도 했다. 이렇게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또 있을까. 지역 TV 방송국 책임자인 후배가 '색종이'이라는 신앙 간증 프로에 출연시켜 준 것도 잊을 수 없다. 선배들의 사랑을 받으며 40~50대를 보냈는데, 이제는 후배들로부터 받는 사랑이라니.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되었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이들을 움직이셔서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욱 겸손히 섬길 것을 다짐한다. 말로는 섬기고 나누며 살자고 해 왔지만, 정작 받기만 하고 살았다. 이제껏 60여 년 살아온 삶이 모두 그럴진대, 새해에는 제대로 베풀며 살아야겠다. '마지막 달'이라는 느낌 때문에 자칫 후회와 회한으로 점철(點綴)되기 쉬운 12월. 그러나 마지막은 끝내 마지막이 아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운 것처럼, 마지막 달은 새해가 가까워져 옴을 알려주는 경계표다. 한 해를 보내며 감사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돌려주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하니, 새해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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