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김동우 논설위원

60~70여 년 전 농촌에는 집마다 개를 키웠다. 반려보다 단백질 보충이나 가계 수입 등이 사육 목적이었다.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밤이면 동네 개들이 툭하면 한꺼번에 짖어 인내를 시험하는 밤잠 설치기였다.

아주 먼 중국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개들은 태양만 보면 일제히 짖기 시작해 해가 질 때까지 짖었다. 왜 그랬을까? 촉한의 국경은 높은 산맥으로 이어졌고, 곳곳에 고산준령이 많았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진다. 구름과 안개가 하늘을 가렸다. 개는 물론 사람조차 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 정도였다. 늘 우중충한 날에 익숙한 개들이 해를 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짖기는 위협 존재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 이를 '촉견폐일(蜀犬吠日)'이라 했다.

중국 월나라는 따뜻한 남쪽으로 눈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눈은 사람에게 희귀 대상이듯 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집 개가 가물에 콩 나듯 내린 눈을 보고 짖자 이웃 개들이 덩달아 짖었다. 촉한 개가 태양을 보고 짖어대듯이 말이다. '월견폐설(越犬吠雪)'이다.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보고 개들이 짖었다, '개 한 마리가 짖자 두 마리가 짖고 만 마리가 한 마리를 따라 짖는다. 아이더러 문밖에 나가보라 했더니, 달이 오동나무 제일 높은 가지에 걸려 있다 하네' 조선 화가 김득신이 자작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를 설명한 글이다. 덩달아 짖는 개에 관한 이야기는 중국 초나라 굴원이 원조다. "개 한 마리가 괴이한 것을 보고 짖으면 마을 개들이 무리 지어 짖는다."(楚辭)라고 했다.

태양, 눈, 달 등 어떠한 것도 개를 위협하거나 불편을 주지 않는다. 괴이한 것도 아니다. 짖어대는 개에게 문제가 있다. 개는 보지 않았어도, 냄새만 맡고 소리만 듣고 짖는다. 제 그림자를 보고도 짖는 동물이다. 개가 소리나 존재에 대한 시각적 분별없이 짖는다는 점에서 떼로 짖는 것은 그 근거나 이유가 없다.

사람들은 '무조건 따라 짖는 개'에 '속 좁은 인간'을 비유했다. '속 좁은 인간'은 상황 판단력과 이해력이 부족한 데다 똥고집으로 타인의 입장이나 주장을 비난하거나 비방하기 일쑤다. 우물 안 개구리다. 이 개구리는 우물 밖 이야기를 오히려 비웃거나 비난과 비방을 서슴지 않는다. 비난과 비방은 자격지심,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비열한 행동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속 좁은 사람'은 관성과 타성으로 현재 굴레의 탈피나 외연 확장을 꺼린다. 편견과 선입견에 안주하며 익숙함을 즐긴다. 문제는 그 익숙함이 주로 타인들을 따라 하다 굳어진 생활 습관이라는 점이다. 익숙함은 부화뇌동이며 정체 아니 퇴보를 낳는다. 부화뇌동은 무임승차의 이득을 노린다. 무임승차하다 얻어걸리면 망신은 물론 수십 배를 물어야 한다. 그래도 무임승차 인간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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