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또 한 해가 간다. 돌이켜 보면 쉼 없이 달려왔다. 코로나는 여전하고 아직 일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봄은 따뜻했고 여름은 뜨거웠으며 가을은 아름답게 물들었다. 기후 변화이니 위기니 해도 사계절의 수레바퀴는 별 탈 없이 굴러왔다. 그나마 다행이다. 지구가 아직은 견딜만한가 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생존 그 자체를 고민한 적은 없는데, 코로나가 닥치면서 과연 인류는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논어 위정편 15장에 "배우기만 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사색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는 공자의 말이 나온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좋아 여기저기서 써먹고 있다. 배우기만 해서도 안 되고, 사색에만 빠져서도 안 된다! 바로 이거다. 나는 여기서 사색을 표현한 '사(思)'라는 말에 꽂힌다. 이 한자를 풀어보면 밭(田)과 마음(心)으로 되어 있다. 결국 사색이란 마음 밭을 일군다는 뜻인데,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그렇다. 배우고 나서는 이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골똘히 살펴야 한다. 그래야 사색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사색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한 해를 보내면서 사색하는 삶을 그려본다. 고전을 들쳐 보다가 아하 하는 순간을 맞는다. 바로 이거구나. 수천 년 전의 성인 말씀이 지금에도 딱 들어맞으니 참으로 놀랍다. 그때 성인은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색을 했을까. 배우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배우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했는데, 이 말도 맞는 말이다. 자기 생각에만 갇혀 남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경계한 말이다. 가끔 그런 사람을 본다. 어떤 한 생각에만 빠져 자기만 옳고 남은 바늘만큼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쟁이 말이다. 이럴 땐 가슴이 꽉 막혀온다. 이런 사람은 배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걸으면서 혹은 자전거를 타면서 사색을 즐긴다. 나는 사색하는 존재다. 중국의 어느 선사가 제자가 맨날 앉아서 좌선만 하길래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제자가 부처가 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사는 난데없이 기왓장을 하나 들고 와서는, 좌선하는 제자 옆에서 벅벅 갈기 시작했다. 제자가 궁금하여 물으니, 선사는 이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제자가 하도 어이없어 기왓장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드냐고 물으니, 선사의 답변이 걸작이다. "야, 이놈아. 그럼 맨날 앉아만 있는다고 부처가 되느냐? 소가 수레를 끄는데 수레가 가게 하려면 수레를 때려야 하느냐, 소를 때려야 하느냐?"이건 중국 당나라 때의 남악회양 선사와 그의 제자 마조도일의 유명한 일화다. 도일은 스승의 이 한마디에 확 깨우쳐서 선종의 일가를 이룬다. 바로 평상의 마음이 곧 도라는 유명한 화두는 여기에서 나왔다.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그렇다. 지금 내 마음이 평화로우면 극락이요, 번민으로 들끓고 있으면 그게 바로 지옥이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관건이다. 앉아서 부처 흉내만 낸다고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한다. 이랴! 하고 말이다. 바로 소는 우리네 마음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힘은 사색에서 나온다. 마음 밭을 열심히 일구어야 한다. 아, 하얀 소의 해인 신축년이 저물어간다. 어땠는가. 나는 밭갈이 잘하는 소 한 마리 잘 길들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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