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겨울이면 더 생각나는 게 있다. 바로 만두다. 만두가게 앞을 지날 때 밖으로 펄펄 나오는 수증기에 뜨끈한 만두가 그려진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만두가게 앞을 지날 때면 더 배가 고팠고, 꼬르륵 소리가 더 났다. 버스비를 아껴가며 살던 시절 만두의 유혹은 꽤나 힘들었다.

나중에 돈이 생긴다면 배가 터지도록 만두를 먹어보리라 마음을 먹곤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몇 번 먹은 만두가 생각난다. 중화요리집에서 먹던 군만두는 바사삭 씹는 소리도 맛있었다. 단짝 친구랑 특별한 날 군만두를 먹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여운이 아주 오래갔다.

지금은 언제든 만두를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예전 만두가게 앞을 지날 때 꾹 참았던 만두가 생각난다. 그래서 여전히 만두는 나에게 귀하고 귀하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런 귀한 만두를 받았다. 그 만두를 만든 사람 이름 앞에 특별한 말이 들어간다. '만두 빚는 시인'이라는 말이다. 바로 김미옥 시인이다. 그가 쓴 '만두 빚는 시인'이란 제목의 시를 보면 더 느낌이 와 닿는다.

'만두를 빚으면서 자꾸만 시를 생각해/ 목련이 지는 봄밤에도 모란이 겹겹이 피어나는 오월에도 사나흘 내내 눈이 그치지 않는 정월에도/ 하얗게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앉아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소를 넣고 만두 귀를 접는 나는 그때마다 시를 생각하는 나는/ 때로 만두는 옆구리가 터지기도 하지/ 시의 옆구리는 터지지 않는 날이 없지…'

김미옥 선생님한테 만두를 받은 날 저녁, 군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쫀득하고 바삭바삭한 게 정말 맛있었다. 오래 전 맛보던 그 만두 맛이었다. 왠지 만두를 먹으면 시가 술술 잘 써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만두소에 시인이 밤새 고민하던 시의 생각들이 들어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만두를 먹고 시가 술술 잘 써진다는 소문이 나서 전국의 시인 지망생들이 개미떼처럼 줄줄줄 줄을 서서 만두를 살 것 같았다. 그런 상상을 하니 더 만두가 맛있고 소중했다.

얼마 있으면 설이 돌아온다. 허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에 들어가는 만두도 참 좋다.

예전 하얀 눈이 폴폴 내리는 구정 전날이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서 그간 있었던 이야기꽃을 피우며 만두를 빚었다. 모두들 어찌나 잘 빚는지 놀라웠다. 한쪽에 나란히 줄 맞춰 놓은 다 빚은 만두는 기계가 만든 것처럼 똑같았다.

그러다 한번은 나도 직접 만두를 빚은 적이 있다. 똑같은 크기로 만드는 것이 지루해질 때쯤 나만의 만두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과모양으로 만들고 엄청 큰 만두도 만들었다.

물론 사과 모양은 옆구리가 터졌고, 큰 만두는 내 그릇에 꽉 찼고 내가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는 게 지금도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싶다.

'만두 빚는 시인'덕분에 요즘 우리 집은 만두 사랑에 푹 빠졌다. 그리고 한번쯤 만두 빚기에 도전할 것 같다. 하지만 만두들도 초짜는 귀신같이 알고 옆구리가 죄다 터지게 한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마침 우리 집 근처에 작년 초인가 만두가게가 생겼다. 조만간 만두가게에 또 가게 될 것이다. 겨울철이면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만두가게. 뿌옇게 김 서린 가게 출입문을 열고 스르르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리곤 얼었던 몸을 녹이며 금방 나온 만두를 먹고 만두 같은 눈이 되어 웃음꽃을 피울 것이다. '만, 만만하게 보지 마. 두, 두말하면 잔소리.' 겨울철 별미 만두에 또 침이 꼴깍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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