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어스름한 저녁 '옛이야기' 간판이 걸린 찻집에 넉넉한 풍채를 가진 중년의 여인 세 명이 들어왔다. 열리는 카페 문을 통해 먼저 들어섰던 것은 피부에 닿는 찬바람보다 까르르 넘어가는 그녀들의 웃음소리였다. 대추차를 주문한 그녀들은 차(茶)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 내부 인테리어가 예쁘다며 연신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에 열중이었다. 수시로 바뀌는 포즈만큼 이리저리 배경을 옮겨가며 부산스럽게 사진 찍기에 열중인 그녀들을 바라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언제나 18세 소녀로군."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지인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일행 중 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들과 같이 다닐 때가 가장 즐겁죠. 어디서 오셨어요?" 나의 질문에 수원에서 왔다는 그녀의 대답이 돌아왔다. 멀리서 오셨으니 즐겁게 지내시고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가시라는 인사를 건네며 며칠 전 일을 생각했다.

최근에 간간히 찾아보는 TV 프로그램 중에는 '내가 나로 돌아가는 곳'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관찰 예능 프로그램 '해방타운'이 있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절실한 기혼 셀러브리티들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결혼 전의 '나'로 돌아가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인데 가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어서 즐겨보는 방송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해방타운 입주자 장윤정. 윤혜진. 신지수. 백지영 4인방이 모여 광란의 장기자랑과 입담을 자랑하는 '크리스마스 파티' 편이었다. 시청하는 내내 마치 나도 그들과 함께 있는 듯 몰입하며 무척 즐거웠는데 남자 게스트들은 맨 정신으로 그렇게 즐겁게 놀 수 있는 여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송을 보고 난 후 세종시에 살고 있는 친구 보경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도 마침 그 프로그램을 보았다면서 우리도 그렇게 한번 해방되어 놀아 보자고 했다. 뜻이 통한 우리는 신년회 겸 그동안 묵혀 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고자 1박 2일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다. 흥이 많은 친구 의숙이와 정란이도 합류하면서 우리들의 만남은 더 기대됐다.

각자 다른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난다는 것은 무척 설렘이었다. 그래서일까, 만나기로 한 날에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었던 나는 새벽에 방앗간에 들러 가래떡 한말을 뽑았다. 공평하게 나눈 따끈따끈한 가래떡이 친구들의 품에 안겨 온기를 전해 주자 그녀들은 무척 행복해하였다. 받는 기쁨보다 더 큰 주는 기쁨을 느끼며 우리들은 먼저 '하늘재'에 올랐다. 겨울바람에 코끝이 시렸지만 하늘재에서 바라본 파란 하늘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시원하다. 하늘재에서 내려와 점심으로 송어회를 먹고 식사 후에 들렀던 카페가 수원에서 온 여인들을 만났던 '옛이야기'였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그곳에서 우리들도 사진 찍고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저녁 식사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자마 바람으로 7080 노래를 열창하였다. 갱년기로 요동치는 감정에 힘들었어도 고향 친구들과 함께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날은 무조건 즐거웠다. 보경이가 재미있게 준비한 젠가 54개에 쓴 질문 하나하나에 답하는 게임과 미션. 그리고 서프라이즈 선물까지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자네와 난 보약 같은 친구야 사는 날까지 같이 가세 보약 같은 친구야…' 새해에 진한 보약 한 첩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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