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얼마 전 집안 청소를 하다가 1996년 제주도로 동아리 MT를 가서 찍었던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그때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가서 사진을 찍고 사진 속 사람 수대로 인화해서 나눠가졌던 기억이 난다. 카메라가 없는 사람들은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구입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필름 카메라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애호가들만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고, 필름을 인화할 수 있는 곳도 찾기가 어렵다.

1990년대 '코닥(KODAK)'과 '후지필름(FUJIFILM)'은 카메라 필름의 대명사였다. 특히, 코닥은 1880년 설립된 이후 필름 시장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 코닥은 후지필름 매출액의 1.5배였고, 매년 1억대 이상의 1회용 카메라를 판매했다. 필름이라는 단어 대신 '코닥(KODAK)'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쟁사인 후지필름을 압도했다. 그러나 이렇게 잘나가던 회사가 2012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90년대까지 코닥은 전통적 사업 분야인 필름에서 엄청난 고정수입을 올리는 한편 1회용 카메라 시장에 진출해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코닥은 디지털 기술로의 변화에 소극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를 가장 먼저 개발했지만 코닥 경영진은 기존 필름사업의 수익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디지털 카메라 상용화를 중지했다. 코닥 경영진은 현재의 달콤함에 다가올 쓰라린 미래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다. 1990년대 말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가 앞 다퉈 출시되면서 코닥의 수익은 급감하기 시작했고, 2005년 이후 적자가 이어졌다. 주가가 곤두박질 쳤고, 결국 2012년 1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한편, 코닥의 뒤를 쫓던 2등 후지필름은 어떻게 되었을까? 후지필름은 코닥과 마찬가지로 필름을 판매하는 회사였지만 화학기술 분야의 기업이었다. 사진 필름 시장이 하락세로 전환되고,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하자 위기를 예상한 후지필름은 회사의 본질이자 강점인 화학기술에 집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사업구조를 변화시켜 화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의약, 화장품 분야로 핵심 사업을 전환해 나갔다. 본업이자 주력이었던 필름 사업을 정리하면서 필름 제조로 축적한 기술을 다른 사업에 응용한 것이다.

2021년 3월 말 기준 후지필름 매출에서 헬스케어와 머티리얼즈(반도체 소재 등)가 차지하는 비중은 48.01%에 이른다. 반면, 카메라 관련 사업(이미징 부문)의 매출 비중은 13.01%에 불과하다. 2000년 후지필름 매출은 1조4천404억엔, 영업이익은 1천497억엔이었고, 2020년 매출은 2조1천925억엔, 영업이익은 1천964억엔으로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 6천엔을 넘지 못하던 주가는 2021년 9월에 9천600엔을 넘어 섰다. 필름 카메라의 종말로 업계 2위 후지필름도 코닥과 마찬가지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고 후지필름은 지난 20년간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코닥과 후지필름은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른 것은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코닥은 현재의 이익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지만, 후지필름은 자신의 강점과 본질을 냉철히 분석하여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후지필름은 디지털 시대의 위기 속에서 약점이 되어가는 강점을 새로운 사업 분야에 접목시켰고, 이를 통해 위기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기회로 삼았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신입생 미달이 속출하고 있고, 등록금 수입 감소로 많은 대학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시대변화로 인해 고등교육기관의 역할 변화가 요구되고 있고, 대학의 교육방식과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코닥과 후지필름이 다가오는 필름 시장의 위기에 대처한 방식은 오늘날 우리 대학들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 우리 대학들도 각자의 본질과 강점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현재의 수익에 미련을 갖고 주저할 것이 아니라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위기를 벗어 날 수 있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혁신'이란 미래를 보고 현재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다. 10년, 20년 후 미래 대학의 역할과 기능을 보고 현재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과감한 '대학 혁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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