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어릴 때 나는 엄마에게 자주 졸랐다.

"나는 호랑이 싫어, 귀여운 토끼거나, 순한 양이거나 사슴이나 다람쥐 뭐 그런 걸로 바꿔줘~" 아무리 떼를 쓰고 졸랐어도 나는 여태껏 사슴이나 다람쥐가 아닌 호랑이로 살고 있다.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검은 호랑이해라고 한다.

우주의 생성과 모든 변화의 원리를 육십갑자(六十甲子)로 풀이했을 때 60년이란, 천지의 한 사이클을 말한다. 천지가 한 바퀴 돌아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60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하고 그렇게 해서 맞이하는 해가 환갑이다.

나는 우주 기운의 한 사이클을 돌아 처음 제자리로 돌아오는 해를 맞이했다. 예전에는 칠순, 팔순의 의미보다 환갑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수명이 짧아서이기도 했겠지만, 다시 태어남의 의미를 새겨본 듯하다.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많은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성장해 나가듯이 이제는 세상 속에서 다시 태어나 내가 나를 보살피며 나의 인생의 길을 시작하는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서점을 찾았다. 그 첫걸음을 서점으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갖가지 수천 권의 책들이 뿜어내는 지적 열기에 가만히 나를 맡기고 책 내음을 흡입했다. 발수고를 하지 않아도 편안히 앉아서 온갖 쇼핑을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굳이 서점을 찾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남들이 소개해놓은 책 내용보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찾아간 곳은 고전 읽기 코너이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두었고, 때로는 급변하는 이 시대에 고루할지도 모른다는 자기합리화에 갇혀 엄두 내지 않고 있던 동양고전 읽기에 도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논어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사람들이 집주해 놓은 논어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책들이 너무 두껍고, 어려운 풀이들이 난무하는 책들 속에서 나를 이끄는 제목하나,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읽는 논어'.

풀이가 세세하진 않지만,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표현들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결정적 선택은 책의 제목이었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나는 이미 절반을 넘어서 새롭게 시작하는 단계에 와 있지만 지금, 논어를 읽어야 할 때임을 책 제목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미 늦은 감이 없지않지만 그동안은 집안일을 돌보고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성숙을 위해 힘써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어떤 것으로부터도 거슬림이 없다는, 귀가 순해지는 이순(耳順)의 나이를 맞이했으니 깊이 있는 사유가 절실히 필요했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나는 때때로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기도 했고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적도 많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겠지만 그럴 때 슬기롭게 나를 이끌어 줄 조언자가 필요했다. 나는 그 조언자를 고전읽기에서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삶의 혜안이 생기는 것은 아닐 터이고, 또 몇 권의 책을 읽는다고 그런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나의 해, 검은 호랑이해를 맞아 열심히 고전 읽기에 도전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얻은 사고(思考)가 있다면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에 적극 나설 것이다.

어릴 때 그토록 싫어했던 호랑이었지만 지금은 그와 함께 힘차게 뛰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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