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종진 충북시인협회장

입춘이 지났다 하여도 절기로는 음력 정월로 늦겨울이자 초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늘따라 정원의 산수유 열매가 유난히도 붉게 빛나는데 올해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갔음에 비로소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는 걸 실감해 보는 저녁이다.

지난 해는 눈 다운 눈이 제대로 내리지 않았고 그렇다해서 그악스레 추웠던 날도 별로 없었던 탓일까? 아직도 떨구지 못한 몇 장의 낙엽이 고즈넉이 하늘거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사는 그저 을씨년스럽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어느 해인들 그러하지 않았을까만 늘 새로운 포부와 결심으로 새해벽두를 시작하지만 섣달그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연초 계획을 얼마나 실천에 옮겨 생활했던가 뒤돌아 보면 그저 씁쓸한 미소만이 감돌았는데 올해는 자신의 진로는 물론 주변정세를 둘러보아도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각오가 앞선다.

공자는 '아침에 생각한 것을 저녁에 깨닫는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였다.

이제 바라기는 열 개의 계획보다 실천 가능한 한 개를 선택하여 한 해가 다 가도록 노력한다면 완벽한 성취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후회하지 않을만큼의 결과는 가져올 것이라 여겨진다.

70년대 중반, 청운의 꿈을 안고 공직에 입문하여 32년이라는 결코 짧지않은 세월을 근무하다 대과없이 정년퇴임을 하였다.

운좋게 퇴임과 동시 제2의 직장에서 선출직 임원으로 계속 12년을 근무하였으니 무슨 미련이 남을까만, 막상 2월 말에 퇴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돌이켜 보면 왜 참기힘든 아픔은 없었으며,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번민했던 적은 없었겠는가?

그럴 때마다 원칙과 공정을 앞세워 생각하고 판단하였으며 직장의 미래를 위한 길을 선택했다.

그래도 가족 모두 건강했고 손주들이 대견스레 커가는 모습을 보며 후여후여 달려온 삶의 고샅길이 내겐 행복한 여정으로 기억된다.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 '인생은 생각한 것 보다 과히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것'이란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 온다.

삶이란 결국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기 이름값을 하며 본인 체형에 걸맞은 인격의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 전반이 위축되어 있다.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숨 가쁘게 치닫는 모습들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진대 밀리면 금방 손해로 이어지고, 그렇다해서 앞서 간다 싶으면 질시의 대상이 되는 세상, 역지사지의 열린 마음이 아쉽기만한 현실이다.

한 박자만 내리고 살아도 될 것을 말이다. 반 내림의 생활!이것마저 뒤쳐진 삶일까?

'몸의 병을 약으로 삼고 살아가라'고 했던 법정의 말씀대로 자신의 약한 부분을 거듭 생각하고 자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이제 저녁해가 제법 길어졌다. 시 외곽인 이곳은 저녁 8시만 돼도 거리가 뜨음하다.

아직도 알알한 찬바람이 귓불을 스치면 객지애 나간 이들은 옛집을 그리워하고 고향의 정취가 삼삼여 올 것이다.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최종진 충북시인협회장

우리 모두 서로가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며 지낸다면 이 늦겨울이 조금은 덜 춥게 느껴질 것같다. 곧 봄이 찾아올테니 말이다.

감나뭇골 내 고향! 지금도 옛 부엉이가 밤늦도록 울어대고 있을지 당최 궁금하다. 그리고 설명절과 대보름이면 공회당 마당에 모여 으레 윷놀이와 자치기를 하며 놀던 고희가 넘어섰을 친구들 또한 못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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