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겨울이 지긋지긋합니다."라는 언어가 뒤꽁무니를 따라와 심상을 뒤흔든다. 한겨울이 얼마나 추웠으면, 그 추위가 오죽했으면 '지긋지긋하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랴. 박수근(1914년~1965년) 화백이 머물렀던 시대는 몸으로 느끼는 추위보다 정신적 추위가 컸음을 비유한다. 돌아보면, 그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모든 것이 어제의 생활 속에 묻힌 듯하나 그렇지가 않다. 사람들은 코로나 19로 물질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분들이 존재한다. 박수근 화백이 전쟁통에서 그림을 그리고, 박완서 소설가가 그날의 생활상을 문자로 세밀히 남겨 시대를 초월하여 조우한다. 우리의 인문적 소양을 높이고자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지금 덕수궁 미술관에서는 박수근 화가에 진솔한 삶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봄을 기다리는 나목', 계절과 시대적 환경에 어울리는 제호이다. 언제부터인가 눈밭에 서 있는 나목이 그저 나무로 보이지 않는다. 겨울나무가 내 모습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더욱 시리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헐벗은 나무가 안쓰럽다고, 비애감이 느껴진다는 분도 있다. 관찰자의 마음에 따라 그 느낌은 달라지리라. 박수근 화백은 나목에서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엿본다. 박완서 소설가는 박수근 화백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 년여 함께 근무한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녀의 등단작 '나목'에서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라고 적고 있다.

그림은 대부분 일상 속 소박한 모습이라 정겹다. 마치 그 시대의 삶의 한 단면을 잘라 놓은 듯하다. 거칠거칠하게 마감한 그림의 질감은 그리움을 자아내는 듯한 느낌이다. '아이를 업은 소녀'는 여동생들을 돌보던 모습이 떠오르고, 펑퍼짐하게 주저앉은 여인의 뒷모습은 전통시장 좌판에서 풋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떠오른다. 같은 소재의 그림이 여럿인데 작품마다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에 이경성은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의 시각은 늘 새롭고 그의 화면은 생명력이 넘쳐흐른다."라고 적는다.

화백은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며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라고 말한다. 그의 언술대로 삶과 작품이 하나인, 일상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작품이라 더욱 가슴을 울린다. 그래선가. 거리에 나목이 보이면 저절로 박수근 화백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우리네 삶을 어루만지는 작가라 더욱 정감이 넘친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멀리 산성 성곽 줄기가 보이고 백화산은 눈이 내려 희끗거린다. 빈산에 제일 먼저 채워질 연분홍 진달래꽃과 팝콘처럼 터지는 생강나무 노랑꽃이 그립다. 화백의 오래 묵은 '고목'에서 흰꽃이 피어나듯 빈산의 나목은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을 껑충 뛰어넘어 봄을 생각하는 내 가슴은 벌써 오월의 태양이 작열"한다는 화백의 마음이 전이되어 감성이 출렁이는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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