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해 4월부터 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다. 결혼 후, 60여 년 일궈온 자신의 터전과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작은 캐리어에 인생을 담아오신 어머님의 단출함이 존경스럽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합가 이후 친구들은 일상의 변화에 대한 내 삶을 걱정해주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디지털화된 집에 새로이 적응해야 하는 어머님이 몇 배는 더 힘드셨을 것이다.
 
우선, 산책이라도 하실라치면 공동 현관부터 패스워드를 눌러야 했고 엘리베이터 버튼도 찾으셔야 했다. 이 문제는 휴대폰에 매단 보조키로 간단히 해결되었지만 보조키는 어머님 눈에 띄기엔 너무 작았다. 어머님의 오른쪽 눈은 시력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이고 왼쪽 눈도 고도 약시여서 시각장애가 있는 상태라 더 힘드신 것이다. 가끔 어머님의 상황이 어떤가 궁금해 한쪽 눈을 감고 바라보기도 하는데 정말 시야가 많이 좁아진다.
 
모든 것이 터치로 해결되는 집에서 버튼의 작은 빛을 찾는 일은 어땠을까. 전등도, 보일러도, 효도한다고 사드린 온도조절 침대마저도 어머님을 괴롭힌다. 지금은 잘 적응하셨지만, 갑자기 찾으실 때는 솔직히 귀찮았던 기억이다. 아, 사회복지사라고 해서 모두 친절하지는 않다. 고객과 가족은 다르니. 가족들이 출근하고 나면 어머님이 고군분투하셨을 거라 지금도 생각한다. 압력밥솥은 가끔 고압을 잘못 누르셔서 누룽지가 생기면 반갑기도 했다. 물론, 어머님은 미안해하셨지만. 정수기도 물이 넘치기 일쑤였고, 세탁기도.
 
그래서 우리 집은 여기저기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다. 어머님의 편의를 위해 생각해 낸 궁여지책이다. 주요 버튼에 빨간 스티커를 붙여 색을 구분하고 손으로 느끼실 수 있도록 해드렸다. 이렇게라도 해서 해결이 되면 다행인데 아직도 어려움을 겪는 게 있다. 집에 방문객이 있으면 약속된 일정이 아닌 이상 전혀 응답을 안 해주신다. 버튼 때문인가 싶어 역시 스티커를 붙이고 설명도 해드렸지만 이건 디지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었다. 의심이 안심인 세상이니 충분히 이해한다. 결국 문제는 사람인가.
 
집에서는 그래도 세심한 아들의 설명과 약간의 고성(절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으로 어머님의 파란만장 디지털 생활은 어느 정도 가능해지셨다. 하루는 어머님이 집근처 대형마트에 다녀오셔서는 허겁지겁 라면을 끓여 드셨다. 마트 외식 코너가 기계로 되어있어서 뒷사람들이 기다릴까 봐 미안해서 주문을 못 하셨단다. 바로 키오스크. 아뿔싸, 최근에 시스템이 개선된 것을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예상을 못 했다. 주변 도움을 받고 싶으셔도 사람들이 다 바쁘고 미안해서 말을 못 걸었다며 깊은 숨을 쉬신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적응할 시간도 없이.
 
그래서 요즘 노인복지기관은 어르신들에게 키오스크 사용법 교육을 하지만 기계마다 다르고 영어표현도 많아 적용이 쉽지 않다. 어머님처럼 키가 작은 분들을 위한 배려도 없다. 키오스크가 높낮이 조절이 되면 좋겠고 최대한 간단했으면 한다.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만 실제 사용자테스트의 기준이 20~30대가 아닐는지.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이용하기 좋게 만들어진 편의시설은 젊은 사람들과 비장애인도 함께 편해진다. 화면 안의 글씨가 좀 더 크면 좋겠고 쉬운 우리 말이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도와줄 사람이 옆에 한사람쯤 있으면 좋겠다. 공공기관 민원도우미처럼. 기계 작동이 익숙한 어르신을 고용해 옆에서 돕게 해드리면 노인 일자리 창출도 되지 않을까.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인건비 줄이려고 기계를 들였는데 사람을 쓰라니 말이 안 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세상이길 바란다. 결국, 기계는 사람이 소비하는 것이다. 한때는 X세대였던 내게도 어머님이 겪으신 혼란이 금방 다가올 것이다. 아니, 이미 와있는지도 모른다. 다 아는 것 같아도 모른 척, 안 본척하는 게 많아진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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