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요즘 인터넷으로 가방판매 사이트를 살펴보고 있다. 오랫동안 들고 다녔던 가방이 낡았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더 사용하려고 했는데 지퍼가 고장 났다. 잘 잠가도 지퍼가 벌어지기 일쑤다.

그뿐만이 아니다. 칸을 구별하는 천은 찢어져 물건을 넣으면 뒤죽박죽이다. 급하게 물건을 찾을 때는 손을 넣고 몇 번을 휘저어야 한다. 새 가방을 사려고 몇 번 마음먹었지만 그동안 정든 가방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낡은 가방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방은 잘 생각해보니 10년, 아니 더 오래 사용 한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가방 가격이 저렴했다는 것만 기억한다. 예전부터 나는 넓은 책상을 갖고 싶었고 마음에 드는 가방을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래오래 가방을 광고하는 것만 보고 오래 오래가 멀리 멀리가 되곤 했다.

좋고 튼튼한 가방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생각과는 달리 '0' 하나가 더 붙은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그냥 입이 쩌-억 벌어졌다. 눈으로 볼 때는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비싸도 너무 비쌌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0'이 두 개 더 붙은 것도 있다고 하니 내가 촌스러워도 진짜 왕 촌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다들 그 비싼 가방이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단다. 그만큼 '0'이 붙는다니…, 내 상상으로는 죽을 때까지 사용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런 가방이 있다면 참말 좋긴 좋겠다. 정든 가방과 이별은 없을 테니까.

인터넷으로 가방 구경은 끝도 없다. 비슷비슷하면서도 다 다르다. 맨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보지만 나중에는 구분을 못하게 된다. 그 가방이 그 가방 같기 때문이다. 어쩌다 마음에 드는 가방이 있으면 '0'이 하나 심할 때는 두 개가 더 붙어있다.

또 어떤 것은 내 눈에 분명 '0'이 와르르 붙어 있을 법한데 그렇지 않다. 가만 보니 가방 보는 내 눈이 정말 꽝이다. 뭐 그래도 내가 사용할 거니까 내 마음에 들면 장땡이다.

언젠가 내 마음에도 들고 나름 가격이 있는 가방을 구입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가방을 들 때마다 부담이 되었다. 편한 가방이 아니라 부담 가방이 된 셈이다. 옷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예전 내가 참 좋아하던 가방이 몇 개 있었다. 아주 오래전 친구가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이다. 서울에 사는 친구는 남대문 시장에서 가방을 샀다고 했다. 그 당시 몇 번 친구를 따라 남대문 시장에 연중행사처럼 간 적이 있다.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다 잠든 밤에도 반짝이는 불빛 사이로 오고 가는 사람들. 당시 우리 동네는 그 시간 어둠 속 조용했기 때문에 띠~옹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림을 그렸던 감각 있는 친구라 가방도 남다른 것을 골랐다. 시골에 사는 나는 어쩐지 급(?)이 다른 가방을 보며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디자인도 크기도 독특하고 참 편했다. 그동안 내가 들고 다니던 가방 중에 가장 좋았다. 그래서 그 가방도 꽤나 오래 매고 다녔다. 물론 주변에서 가방이 괜찮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며칠째 고민하다 드디어 가방을 선택했다. 그래도 이 가방이 좋네, 저 가방은 크기가 좋네…, 혼잣말을 할 때였다. 아내는 단번에 가방을 모두 구입하라고 했다. 내 가방 타령이 지겨웠나 보다.

그래서 졸지에 가방이 세 개나 생기게 되었다. 아내는 바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한 잔 가득 가져왔다. 이만하면 눈치 조금 있는 나도 잘 안다. 가방 닳도록 아주 열심히 일하라는 신호다, 가방이 올무가 되었다. 그래도 이런 올무는 몇 개쯤은 더 걸려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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