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저 나무 수레에 실어서 군불 때면 제격인데." 잔설을 헤치고 산성을 걷는데 동행한 지인은 땔감을 보고 아까워한다. 잔가지와 나무를 베어 중간 중간 쌓아 놓았다. 잎새 떨어뜨린 겨울이라 눈에 잘 띈다.

잔가지를 베자 산은 말쑥하게 이발한 신사 같다. 길옆 꽃가지는 그냥 두어서 천만다행이다. 진달래 몽우리에 봄이 오나보다 감탄하고, 꽃잎 배시시 피면 환호하며 걷던 재미가 없어질까 봐 걱정했다. 덕분에 분홍빛 진달래 풍성한 등산길을 기대해도 될 듯하다.

그루터기가 많이 보인다. 나무를 벤지 얼마 안 되었는지 그루터기에 나뭇조각들이 있다. 전망 좋은 곳에는 잠시 쉬었다 갔는지 베어놓은 나무를 세워 의자로 만들어 놓았다. 꿈에 부풀어 하늘을 향해 뻗던 우듬지는 어디에 있는가. 몰곳몰곳하던 나무가 벌목으로 한순간에 잘렸다. 멋들어지게 휘어져 늠름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선택되었고, 잘린 그루터기나 잡목들은 선택된 나무를 위해 가차 없이 베어졌다.

그루터기가 오래되어 썩은 고주박이 많이 보인다. 땅에 박힌 채 삭은 그루터기가 고주박이다. 생생하던 그루터기가 비와 햇볕과 바람에 썩어 뽑히고 부서지고 있다. 둥치 큰 나무가 고주박이 되기까지 나무의 생이 보인다.

지금처럼 벌목하고 몇 년이 지나면 나무 밑동이 썩어 고목이 된다. 큰 망치나 도끼로 두들겨 넘어뜨린 후 빼내어 땔감으로 쓰던 것이 고주박이다. 어렸을 적에는 땅에 박힌 고주박은 힘이 없어서 못 줍고 발로 차서 부서지는 것만 주웠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겨울에 틈만 나면 산에 가서 고주박을 주워 날랐다. 남자애들은 땔감에 따라 바소쿠리를 얹거나 그냥 지게에 실었지만, 여자애들은 비료 포대나 마대 자루에 담아왔다.

부엌문을 열었을 때 나뭇간이 그득 차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맞은편은 찬장이다. 반찬을 부엌에서 찬장에 넣으면 마루에서도 꺼내 먹을 수 있어 편리했다.

부뚜막에는 솥이 세 개 걸려 있었는데 큰 가마솥에는 씻을 물을 끓였고 중간 가마솥에는 밥을 짓고 맨 왼쪽 작은 가마솥에는 국 끓이고 볶는 음식을 주로 했다. 나뭇간 옆에는 광이 있어서 쌀이나 곡류, 김치류가 있고, 시렁에는 홍시가 놓여있기도 했다.

어렸을 적 난방이 땔감일 때는 너도나도 나뭇잎을 긁어모아서 민둥산이었다. 지금은 떨어진 나뭇잎들이 땅에 한가득하다. 참나무와 소나무 잎사귀가 많다. 갈퀴로 긁어모아 불을 때보면 화르르 금방 탄다. 청솔가지를 태울 때면 연기와 함께 청솔가지 타는 냄새가 좋았다.

후루룩 타서 계속 땔감을 넣어야 하는 나뭇잎에 비해 오래 타고 화력이 좋기는 고주박이 제격이다. 장작이 땔감으로 좋지만, 장작 찾기가 쉽지 않던 시절. 때로는 장작개비의 희나리가 터지는지 탁탁 튀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고주박이나 장작을 땔 때도 불쏘시개로 솔가리나 검불을 썼다.

지금은 텅 빈 가지에 땅에는 마른 나뭇잎만 버석거리지만 이제 조금 있으면 연둣빛 새싹 뾰쪽이 나와 산빛을 바꾸어 놓으리라.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요즘은 난방기구가 좋아져서 고주박을 줍지는 않는다. 가끔은 고주박으로 군불 지핀 온돌방에 누워보고 싶을 때가 있다. 비가 오는 날이던가, 부모님이 그리운 날이던가, 어릴 적 추억에 젖으면 따끈따끈한 방바닥이 그립다.

군불에 냇내로 훈기가 돌던 부엌, 나뭇간에 그득하던 고주박도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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