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신호 청주시상당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작년 10월 15일, 노숙자 발생 신고가 들어와 현장에 출동한 적이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무심천가의 벤치에 한 사람이 비를 맞고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의 곁에는 각종 쓰레기와 짐을 꾸겨 넣은 커다란 봉투뿐이었다.

여기에 이렇게 앉아있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젊은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지, 그 궁금증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우산을 씌워준 팔이 아프고,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체취에 그만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궁금증을 대체해 버렸다. 그는 아무 곳에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무엇을 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으며 그저 돈을 좀 달라 한 것이 전부여서 이만하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생각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설득해 보다가 돌아온 것이 그날 있었던 일이다.

그렇게 돌아왔지만, 그날 이후 공무원으로서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타인의 삶에 억지로 개입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으로서 나의 의무는 어디까지인가. 끝내 그는 자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남에게 얘기하지 않는데, 길가에 비를 맞으며 앉아있는 노숙인이라 하여 다를 것은 없다.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삶의 모습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그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이 빠르게 다각도로 진전되면서 그 흐름에 발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변화의 과실을 분배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의 삶의 결과에 대한 귀책이 모두 그들 스스로에게만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위태로운 사람에게는, 관련 없는 주변인이라 하더라도 특히 공무원의 경우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행태는 사회구성원 사이에 신뢰와 믿음을 구축하는 가장 견실한 방법 중 하나다. 나에게도 이런 적극적인 자세가 체화될 필요가 있다.

김신호 청주시상당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김신호 청주시상당구 주민복지과 주무관

결국 그를 설득하지 못했지만, 과연 나는 그의 삶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공무원 조직의 일원으로서 역할과 의무를 다했는 지 의심이 든다. 약간의 여비를 쥐여주고 노유자 시설에 데려다준 것이 다였지만, 그때의 경험은 복지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재정립하며 보다 진취적인 업무 수행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좋은 배움을 준 부서와 직원분들께 감사하며, 이런 경험들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나아가 그들이 그 짐을 덜어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참된 공무원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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