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박은지 문화부장

두달여 전 온라인을 통한 소소한 독서모임에서 다룬 책은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였다. 줌을 통해 이뤄진 독서모임의 구성원 10명 중 9명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30~50대 사이의 유료 회원들이었다. 96페이지에 불과한 이 책을 가지고 회원들 모두가 2시간30분 내내 진땀을 흘리던 기억이 났다.

개소리란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부터 개소리와 거짓말의 차이, 가장 기억에 남는 개소리에 대한 에피소드까지 이어가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까지 소환했다. 얘기는 자연스레 대선후보인 이재명, 윤석열로 옮겨가 난상토론을 이어갔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개소리를 하는지.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3월9일은 대통령 선거와 6월1일 지방선거가 연이어 치러지는 해이기도 하다. 민심을 움직일 수 있는 정책과 공약은 차치하고라도, 대선후보들의 도덕성이 입길에 오르내리는 형국이니 민망함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10일 열린 제3대 청주예총 회장선거는 참신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청주 연극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동료지간인 문길곤씨와 진운성씨의 대결은 단연 문화계 안팎으로 화제였다. 최근 일간지 문화부기자단이 마련한 진운성 전 회장의 오찬자리에서 진씨는 "당연히 재선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문길곤씨가 나와 당황했다"며 특유의 솔직함으로 4년간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선거 당일 투표장 입구에 서있던 진씨와 10여m 멀찍이 서 있던 문씨는 회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는 모습부터 대조적이었다. 두명 모두 큰절로 시작했지만 출마의 변부터 달랐다. 문길곤씨는 화합, 온라인 플랫폼, 예술연구소, 예술인거리, 청주예술원 설립 등을 내세우며 예산이 얼마 투입될지 확실한 청사진을 그려내며 차분히 공약을 발표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진운성씨는 청주예총을 위해 투쟁하고 행동했다며 청주예총 취임날 팔을 걷어부치고 청소부터 한 일화를 소개하며 4년동안의 성과를 반추했다. 그러면서 진운성씨는 예술인은 예산 몇푼때문에 참아내고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며 울분섞인 목소리를 토해내기도 했다.

공통적으로 그들이 내세운 공약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도 갈 길 먼 청주예술행정에 대한 갈증도 엿보였다. 부족한 공연장과 전시장, 원로예술인에 대한 예우와 기록보존, 종합예술을 위한 박물관과 기념관의 부재 등 토대 마련부터 예술인축제와 화합 등 한목소리를 냈으니 말이다.

박은지 문화부장
박은지 문화부장

청주예총 10개 협회에서 대의원 10명씩 총 98명이 참석한 이날 투표에서 문길곤씨는 61표를 획득해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21세기 리더는 지시하고 명령하는 보스가 아닌 소통과 경청을 하는 사람"이라며 "10개협회를 위해 뛰며 시민에게 사랑받는 예총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법정문화도시 청주시를 구현하는데 청주예총이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다짐이 공허한 메아리로 흘러가버리는 공약(空約)이 아닌 공약(公約)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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