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약속, 맹세에 대하여

약속이나 맹세가 지켜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지켜질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는 우연일 뿐이다.

사람은 변한다. 세상에 변하지 아니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를 가정할 때 약속이나 맹세가 지켜지길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굳이 약속이나 맹세를 하는가.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가 아니다. 똑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어제의 나는 흘러가버리고, 오늘은 새로운 내가 태어난다.

사랑의 맹세를 비롯한 모든 맹세는 거짓일 때만 가능하다. 모든 맹세는 미래에 살기 때문이다. 미래는 변한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가 아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어른들이 말하는 '보증 서지 마라'는 것은 지혜에서 나온 말씀이다.

보증이란, 나도 상대도 상황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아닌가.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사람들은 흘러가고 흩어져 간다고 하였다. 스토아학파들은 현재라는 때는 없는 것이고,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시간은 미래 과거가 합치는 연결점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동일한 강물 속에 두 번 들어가본 사람은 없었다고 하였다. 에피카르모스는, 이전에 돈을 차용한 자는 지금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지난밤에 다음 날 조반에 초대된 자는 그자가 이미 똑같은 자가 아니니까 지금은 초대받지 않고 오는 것이며, 그들은 이미 다른 자들이 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 죽어갈 자의 실체는 두 번 동일한 상태에 있을 수 없으므로, 그 실체는 급격하고 가볍게 변화하여 가며, 이때는 흩어지고 저 때에는 한데 뭉치며, 그것은 오고, 그리고는 가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출생하기 시작하는 것은 결코 완벽한 존재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그것은 출생이라는 것이 결코 완수되는 일이 없고, 목표에 도달한 것으로 정지하는 일이 없으며, 반대로 종자 때부터 항상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변하고 변화해가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인간의 정액이 어미의 배 속에 들어가서 형체 없는 열매를 맺으며, 다음에 어린애가 형성되어 밖으로 나와서는 젖먹이가 되고, 다음에는 소년이 되고, 연속해서 청년이 되며, 다음에는 성년, 장년으로, 마지막에는 쇠잔한 늙은이가 된다는 식이다. 이렇게 연대와 연속하는 세대는 항상 먼저 것을 해체시켜 부숴가는 것이다.

'실로 시간은 세상의 모든 본성을 변화시킨다. 모든 일은 한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상태로 바뀌게 되어 있다. 그리고 자체로 닮아서 남는 것은 없이, 모두가 옮기어 바뀌며, 자연은 모든 것을 변형시키고 변하게 강제한다.' (루크레티우스)

또 우리는 이미 죽음의 종류들을 거쳐왔고, 하고많은 다른 종류의 죽음들을 겪어가는 바에, 우리가 한 종류의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던 바와 같이, 불의 죽음은 공기의 출생이며, 공기의 죽음은 물의 출생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 확실하게 그것을 자신에게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춘기는 노년이 닥쳐오면 사라져가고, 청년기는 장년기에 끝맺고, 소년기는 청년기에, 그리고 유년기는 소년기에 사라지며, 어제는 오늘에 사라지고, 오늘은 내일에 죽어 없어질 것이며, 늘 그대로 머물러서 똑같은 하나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다는 증거로, 우리가 늘 하나로 동일하게 머무른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때는 한 사물을 가지고 즐기고, 저 때는 다른 사물을 가지고 즐기는 것일까? 어떻게 우리는 반대되는 사물들을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칭찬도 하다가 책망도 하는 것일까? 어떻게 우리는 동일한 사상 속에 동일한 심정을 품고 있지 못하며 다른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인가? 우리가 변하지 않고는 다른 정열을 품는다는 것은 진실하지 못하다. 그리고 변화를 겪는 것은 동일하게 머무르지 못하며, 동일하지 않으면 역시 있음이 아니다. 그러나 온전히 하나로 있는 존재와 함께 단순한 존재는 변화하며, 항상 하나의 것으로부터 다른 것으로 되어간다. 그렇게 변화하는 까닭에 자연의 감각들은 속고 속이며,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타나는 것을 존재하는 것인 줄로 안다." (몽테뉴 저, 손우성 역 '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2007)

유명한 작가 중 더러는 임종의 순간에 자신의 작품을 모두 태워 버리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어제의 작품을 대하는 오늘의 그는 또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항상 그의 작품에 불만인 것은 그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러하므로 변화 앞에선 약속도, 맹세도,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그래서 침묵은 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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