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방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추진된 지방자치법 개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 후속조치로 지방자치단체 단체장 선출 방법을 다양화하는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준비한 이 법은 현재 전국의 광역·기초단체들에 대한 권역별 온라인 설명회에 이어 지자체들의 의견수렴을 거쳤다. 정부는 이달안에 초안을 마련해 국회 입법절차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주민자치와 직결된 내용인데도 국민의견 수렴 등은 아예 제외된 채 속전속결로 추진되고 있다.

이 법안의 내용을 따지기에 앞서 제정 절차와 과정에 심각한 하자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 생활환경과 여건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자치단체 수장의 선임방법을 다루는데 그 대상자인 주민의 뜻이 빠진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이런 대명제를 아무런 논의조차 없이 건너뛰겠다는 셈이다. 권력의 주체인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으려면 먼저 위임여부에 대한 동의부터 받아야 한다. 단체장 선임방법 논의는 선출방법의 변경, 위임 여부가 결정된 다음에 하는 것이 맞다.

이런 과정상의 문제도 있지만 내용은 더 황당하다. 뜬금없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지자체장 간선제를 다루는 법안이기에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지방자치는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런 지방자치의 핵심이자 꽃인 단체장 선출을 간선제로 바꾸겠다는 게 이 법안의 핵심인 것이다. 내용상으로는 지금의 직선제를 대신할 3가지 방안을 추가해 지자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국 선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민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단체장을 선출하겠다는 얘기다.

특별법에는 지방의회에 선출을 맡기는 것 외에도 주민 직선을 유지하면서 권한을 분산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지자체장의 권한 약화는 불보듯하다. 심지어 의원들 중에서 단체장을 선출하는 안도 있다. 권한 분산은 인사·감사·조직·예산편성 권한을 의회로 넘기게 된다. 한마디로 의회에 더 큰 권력이 가게 돼 권력집중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이들 방안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주민투표로 결정된다. 그러나 그 가능성만으로도 권력을 얻기위한 갈등과 분열, 논란과 잡음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잘못된 과정과 절차, 내용도 그렇지만 우리 의회수준으로는 이를 감당해 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더 문제다. 부활된지 30년을 넘겼지만 지방의회의 현실은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 의회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주민 불신이 큰데다가 지지체와 단체장에 대한 견제·감시도 허점투성이다. 지금도 제역할을 못하는 데 더 큰 권력을 쥔다면 더 큰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지자체 자율성이라는 명분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자치의 근본 취지를 벗어난다면 재고해야만 한다. 더 큰 논란이 예상된다면 지금 다시 살펴보는게 옳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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