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졸업과 입학 시즌이면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연인 같은 아릿한 추억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고등학교도 무상교육이지만 예전에는 어렵게 합격하고도 입학금을 내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유학(遊學)해야 하는 대도시 상급 학교 진학은 가족들의 희생 없이는 힘들었다. 입학금이 해결되기 전에 밥은커녕 물도 넘길 수가 없었다. 며칠을 굶어 어지럽고 두통이 심했다. 입학금 마감 날 희붐한 새벽에 집을 나왔다. 아버지 묘소에 가고 싶어도 버스비가 모자랐다. 추운 날씨에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제방 길을 서성였다. 세상이 끝난 듯 슬픔에 잠겨있는 나와 달리 아침 해는 힘차게 솟아올랐다.

사람들 눈을 피해 진천교 밑으로 갔다. 걸인들의 따가운 눈초리에 백곡저수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추위를 이기고자 발걸음을 빨리했다. 어느새 댐 수문 앞에 도착했다.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 되돌아왔으나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극장표를 샀다. 제목은 보지도 않고 구석에 앉았다. 애절한 흐느낌이 극장 안을 가득 메웠다.

마지막 상영이 끝났다. 퉁퉁 부은 눈을 누가 볼세라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제방으로 향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흘린 눈물의 반을 쏟아 놓았어도 또 나올 눈물이 있는지 그치질 않았다. 울다 지쳐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열나흘 달빛이 교교히 흐른다.

마음을 가다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한 번만 도와주시면 희망을 심는 사람이 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응답이라도 하듯 열나흘 달빛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주고, 별님은 아픈 마음을 다독여줬다. 흘부들한 모습으로 대문에 들어섰다. 엄마와 오빠들이 반색한다. 입학금도 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꿈이 아닌가 싶어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수첩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 사진에 입맞춤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꽃길만 있으면 좋으련만 누구나 고비는 있게 마련이다. 그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고 본다. 그날 이후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감내할 수 있었다.

요양원이 없을 때였다. 직장생활과 집안일도 벅찬데 할머님과 어머님 병시중은 내 삶을 반납해야 했다. 미흡하지만, 간병인은 낮에만 두고 밤잠을 설쳐가며 8년 동안 맏이의 사명을 다했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집안의 대소사는 모두 맏이의 책임이라는 어머니 말씀에 왜 그리 신경 쓸 일이 많은지 한숨으로 지새는 날도 많았다.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진다는 마음으로 제가(齊家)했다. 힘든 고비마다 삶의 지혜는 불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건강한 씨앗을 심는 데 있다는 말을 곱씹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불행을 슬퍼하지 말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라.'라는 명구도 되새겼다.

열나흘 달빛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살아가는 법을 깨우쳐 주었지 싶다. 성마른 내 성미도 눅잦혀 공직생활은 물론 막중한 칠 남매의 맏며느리를 손색없이 소화하도록 했다. 완벽한 보름달에 충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나는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열나흘 달빛이 사랑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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