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없는 전쟁 '의료기기'

"의료기기는 유비쿼터스 시대의 총아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이건호 의료기기안전정책팀장은 입만 열면 의료기기가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수 있는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며 열변을 토한다.

"우리나라 생명공학이 의약품쪽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제품은 의약품이 아니라 의료기기 쪽에서 나올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 팀장의 설명과 달리 우리나라의 의료기기 시장을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별로 가능성을 찾기 어려운 `구멍가게 수준'이다. 좋게 보면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지만 갈길이 멀어보인다.

식약청이 발간한 `2005년 식품의약품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생산실적이 있는 의료기기 제조업체는 1천500곳이다. 2003년 1천12곳에 비하면 50%나 급증했다.

의료기기 품목수는 2000년 3천175개에서 지난해에는 5천862개로 4년만에 84%나 불어났다.

그러나 지난해 국내 의료기기 총 생산액은 1조4천782억원으로 웬만한 대기업 한 회사의 매출 밖에 안된다.

이중 생산실적 1위 업체는 ㈜메디슨으로 420억원이 고작이다. 업계 1위 회사의 매출이 벤처기업 수준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의료기기 정책을 담당하는 최고 전문가가 이처럼 한국 의료기기 산업의 가능성을 얘기하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분명하다.

의료기기는 단순히 의료 분야의 기계가 아니라 정보통신과 과학의 복합체라는 것. 말하자면 `짬뽕 기술'이고 전문용어로는 서로 다른 분야가 어우러져 만드는 블루오션인 컨버전스(융합)의 영역이다.

이 팀장은 "요즘 의료기기의 개발 추세는 BT(생명공학)를 바탕으로 IT(정보기술)와 NT(나노기술)가 접목되면서 숨가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며 "이러한 면에서 IT분야의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게 큰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기라고 하면 초음파진단기, MRI, CT 등 환자를 치료하는데 쓰이는 병원용 기기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는 웰빙 수요에 따라 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생활용품이 의료기기가 될 수 있다.

이미 비데 같은 경우는 사용하는 동안 사용자의 혈압을 체크해주는 기능을 갖춘 제품이 나오고 있고, 앞으로는 휴대전화, 자동차, 책상 등 모든 것이 건강에 도움이되는 의료용 기능을 갖추게 될 것이라는 것.

또한 한국 의료진의 기술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며 소비자들의 요구 수준이 높은 것도 한국 의료기기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세계 의료기기 시장을 장악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국내 기술과 제도가 세계 표준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나아가 새로운 분야에서 표준을 선점하는 것이다.

지난 2003년 5월 의료기기법이 만들어져 지난해 5월 시행에 들어간 것은 한국 의료기기 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료기기 분야에 대한 별도의 법률이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일본의 경우 의료기기를 약사법에서 관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의료기기 분야의 기준을 정했다는 것은 업체들이 의료기기를 개발, 하는데 있어 법 규정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상용화의 기간을 단축시키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식약청은 또한 국내 의료기기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춤으로써 국내 의료기기 기술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식약청은 이와 관련, 지난 4월 `한국의료기기 국제조화위원회(KGHC ; Korea Medical Device Global Harmonization Committee)'를 발족, 이 기구를 통해 국내 기준을 국제 기준과 부합하도록 하고 있다.

KGHC는 의료기기 국제조화기구(GHIF)와 아시아조화회의(AHWP) 등 국제기구와 인적ㆍ물적 교류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내년 9월 AHWP를 국내에 유치한 것은 아시아권에서 한국이 표준을 선도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건호 팀장은 "날마다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쏟아져나오는 분야가 의료기기여서 표준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IT,BT,NT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소비자들도 다양한 요구가 분출하는 우리나라가 세계 표준을 이끌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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