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용기에 관하여

우리가 가진 창의성과 훌륭한 계획, 꿈, 희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용기가 없어서이다.

플라톤은 '시작이 반이다'가 아니라 시작은 반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누구도 시작의 가치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한 시작에 우리가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용기가 없어서이다.

용기가 없다면 시작 자체가 없을 것이다.

괴테는 '꿈을 품고 무언가 시작할 수 있다면 용기로써 실행하라. 그곳에 당신의 천재성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그런데 왜 실행에 주저하는가.

용기가 없을 따름이다.

용기는 왜 없는가.

두려움과 불안이 그 원인이다.

우리가 목표를 찾았을 때는 행동해야 이룰 수 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의지의 덕이 용기라고 했다.

목표는 의지를 낳고, 의지는 용기를 품어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니체는 베수비오(스) 화산의 폭발이 두렵다면 차라리 그 바로 밑에 집을 짓고 위험하게 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Amor Fati(네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말한다.

운명의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으며, 피할 수도 없기에 정면 대결하라고 말한다.

운명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랑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그 운명이 나를 굴복시키지 못했다면 나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러한 삶에는 필연적으로 용기가 필요하다.

세네카는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운명을 무시하라. 나(신)는 운명에게 너희의 영혼을 칠 수 있는 무기를 주지 않았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저, 천병희 역 '인생이 왜 짧은가', 숲, 2005)

믿음과 신념, 용기로 무장한 고귀한 영혼은 운명조차도 칠 수 없다고 말한다. 세네카의 말대로라면 운명은 극복 가능한 것이다.

용기에 의한 행동은 두려움 없이 행하는 것이며, 따라서 어떤 결과만을 바라고 하는 행동은 정의와 신념, 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결과에 두려워하고 집착하여, 네 행동의 결과를 네 동기로 삼는다면 삶은 속박되고 불순해질 것이다.

탈무드는 말한다.

"승자는 과정을 위해 살고, 패자는 결과를 위해 산다."

용기는 결과를 두려워함 없이 과정 속에 살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려움 없는 용기는 어떻게 생기는가.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식이 귀여운 자는 그 자식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자는 그 몸을 사랑하며 공적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그 일을 사랑한다. 사랑이 깊은 자모는 어린 자식이 행복해지도록 힘쓰고 행복해지도록 힘쓰면 화를 물리치는 일을 하게 되고 화를 물리치는 일을 하게 되면 사려가 깊어지고 사려가 깊어지면 사리를 알게 되고 사리를 알게 되면 반드시 성공을 거두고 반드시 성공을 거두면 일을 실행할 때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이지 않는 것을 가리켜 용기라고 한다. 성인이 모든 일에 대처하는 것도 모두 자모가 어린 자식을 위하여 염려하는 것과 똑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도를 찾아낸다. 반드시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도를 찾아내면 (사리에) 밝아지고 그 일에 종사할 때 역시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이지 않는 것을 가리켜 용기라고 한다. 망설이지 않는 것은 자애로부터 생긴다. 그러므로 노자에 말하기를 '자애롭기 때문에 능히 용감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한비 저, 이운구 역, '한비자 1-2', 한길사, 2002)

노자 '도덕경'은 이렇게 말한다.

"자애로우므로 용감할 수 있고, 검소하므로 넉넉할 수 있고,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으므로 웃어른이 될 수 있다."

용기는 자애로움, 즉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자애로움 없이 용맹하기만 했던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나 알렉산더, 카이사르의 용기는 만용이었으며, 사랑에서 비롯한 체게바라나 묵자, 소크라테스의 헌신은 자애로움에서 드러난 진정한 용기였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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