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마쓰시타 VTR 표준화 전쟁서 교훈

`표준화 선점을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이 생명이다'

경영학 교과서에 등장할 만큼 유명해진 1970년대 소니와 마쓰시타간 VTR 표준 경쟁은 `기술보다 마케팅'이라는 전형적인 교훈을 남긴 사례로 기록된다.

표준 경쟁에서는 누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 냈느냐도 중요하지만 이같은 기술적 우위를 시장에서 성공으로 연결짓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동맹군을 많이 확보하는 마케팅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당시 전세계 전자업계를 호령하던 소니는 베타 방식의 표준화에 실패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전자업체라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1975년 4월 16일 소니는 세계 최초로 가정용 VTR을 만들어 냄으로써 TV문화 자체를 바꾸는 `혁명'을 이뤄냈다.

당초 비디오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951년 방송용 VTR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이는 가정용으로 쓸 수 없는 복잡한 대형장치였다. 이를 가정용으로 먼저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소니의 베타 제품이었다.

소니는 VTR의 개발로 가정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새로운 TV 문화를 만들어냈고 VTR은 가전제품의 상징처럼 인식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마쓰시타의 자회사인 빅터는 이듬해 소니의 베타 방식과 다른 VHS 방식의 VTR을 개발함으로써 소니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졌다.

두 회사의 제품을 비교해보면 소니의 베타는 비디오테이프의 크기는 작지만 화질과 음질을 비롯한 모든 성능에서 마쓰시타의 VHS를 앞선 것으로 평가됐으며, VHS는 녹화시간이 베타보다 길다는 장점이 있었다.

말하자면 소니는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고 있는 선발 주자였고, 마쓰시타는 기술력에서 뒤지는 후발주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니는 제품을 판매하는 마케팅 과정에서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고 이는 곧 제품의 생명력을 결정짓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

비디오가 문화 상품에 해당하므로 좀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 결국은 시장에서의 성공을 불러온다는 평범한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소니는 비디오플레이어를 비롯한 모든 기술을 특허로 독점하고 기술 이전을 거부했으며 각 업체들의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생산 제의도 무시했다. 뛰어난 성능과 앞선 기술로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반면에 마쓰시타는 선발 주자를 뒤따라 가지 않고 차별화된 전략으로 시장을 역공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VHS 방식은 베타에 비해 기능이 간단하고 명료했다. 베타는 복잡한 기능을 갖추고 있으나 VHS는 녹화와 재생, 2가지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기능은 아예 없애거나 줄여버렸다.

그리고 마쓰시타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세계 시장에 기술을 이전해줌으로써 후발 주자로서의 약점을 `세(勢)확장'으로 보완했다.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전해주자 VHS방식을 사용하는 업체들이 급격히 늘었고 이는 자연스런 시장의 `동맹군'으로 자리잡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삼성과 대우, 금성이 비디오플레이어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보급 초기에는 성능이 앞선 베타 방식이 우세했지만 VHS 방식의 제품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마쓰시타는 녹화가능시간이 베타보다 길어 미식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나 대작 영화를 녹화하려면 VHS가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여기다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이 VHS방식을 지지하면서 자사의 영화를 VHS방식으로만 비디오테이프로 출시하는 사례가 늘어난 점이 전세가 VHS진영으로 기울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베타 방식의 영화 비디오가 출시되지 않기 때문에 베타 방식의 VTR을 구입하면 빌려볼 테이프가 없게 된 셈이다. 베타 방식의 콘텐츠 부족은 결국 VHS방식의 VTR 구입으로 이어졌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자 베타 방식은 시장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게 됐다.

당시 일본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서로 교환해 보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집에 베타 방식의 VTR이 있는 학생은 테이프 교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따돌림(이지메)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소니의 실패는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 해도 시장에서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다른 기술에 의해 추월당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또 최고의 기술이 반드시 시장의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며 경쟁자와의 제휴가 필수적이며 여기에서 뒤처지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표준으로 성공한 기업은 시장에서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 타 업체로부터 기술특허 수입까지 챙길 수 있는 반면 실패한 업체는 그동안의 투자 비용은 물론 강자의 표준을 따라가기 위한 비용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절한 '생존의 법칙'이 군림하고 있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과거와 달리 특허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들끼리 손을 잡고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강자연합'이 늘어나고 있다"며 "글로벌 정보산업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 회사의 제품과 관련된 표준의 동향을 파악하고 따라잡는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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