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틱낫한 스님은 '연꽃이 진흙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행복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라고 했고, 정호승 시인은 "진정한 희망은 절망에서부터 비롯되기에, 절망이 없는 희망보다 절망이 있는 희망이 더 가치 있다."고 했다.

인류의 역사는 더 나은 삶을 개척하며 살아왔다. 분명히 더 나은 곳, 더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감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며 역사를 이어왔다. 우리의 꿈꾸는 희망에 우리가 겪은 아픔을 넘을 수 있었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놀았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고 말했다.

"내일이 뭔데?" "캄캄한 밤이 지나면 밝은 날이 오는데 그게 내일이야."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이 말을 듣고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 메뚜기는 어느 날 개구리와 함께 놀았다. 개구리는 "날씨가 추워지니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고 말했다.

"내년이 뭔데?" "내년은 겨울이 끝난 후 날이 따뜻해지려고 할 때 오는 거야." 그러나 메뚜기는 개구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 현대인의 비극은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즉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고 내일보다 모래가 더 좋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한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이었다. 러시아의 한인들은 부지런하고 적응력이 강했다. 러시아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 이러한 한인들을 교묘히 이용했다.

연해주 일대의 미개간지를 개척하게 한 후, 이 개간지를 빼앗고 1937년부터는 중앙아시아 미개간지로 한인들을 추방시켰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타슈겐트까지의 조선인 강제 이송이 그것이다. 그들은 부동산은 물론 동산, 가축 어느 한 가지도 가져갈 수 없었다.

40일 동안 기차를 타고 카자흐스탄의 집 한 채 없는 허허벌판에 버려진 한인들은 땅굴을 파고 민들레와 야생식물 등을 의지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리고 가지고 온 밀과 귀리와 완두콩을 심었다. 이 씨앗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을 때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난생 처음 보는 농산물에 놀라워했다고 한다. 한인들이 가져간 한 줌의 씨앗은 당장 먹을 수 있는 한 자루의 식량보다 생명력 있는 장래를 약속해 주었다.

어떤 노인이 뜰에 과수 묘목을 심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말을 걸어 왔다. "도대체 언제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겠다고 나무를 심는 겁니까?" 그러자 노인이 하던 일을 쉬지 않고, "한 70년 지나면 열매가 열리겠지"하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나그네가 "노인장께서 그토록 오래 사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제서야 노인이 잠시 일손을 놓고, 나그네를 바라보면서 또렷하게 말했다. "그렇지는 않지요. 하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 과수원에는 열매가 풍성했었단 말이오. 그 나무를 누가 심어 놓았겠소. 바로 우리 아버지였단 말이오. 아버지가 자손들을 위하여 과일 나무를 심어 놓았단 말이요. 나도 아버지처럼 하는 것이오."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유종렬 전 음성교육장

우리는 늘 미래에 살아간다.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하며, 무한한 감사를 가지고 오늘을 기쁘게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하나하나 쌓아가기보다 소유가 많고 지위가 높은데서 인생을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다. 지금 보내고 있는 고통의 시간이 성공을 향한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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