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종진 충북시인협회장

겨울이 춥고 길수록 오는 봄이 더 푸르다고 했던가. 지난 겨울은 그리 춥지도 않았고 눈 다운 눈이 내리지 않아 건조한 날이 오래 지속되는 바람에 전국이 산불 비상으로 홍역을 치렀고 아직도 피해 지역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복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절기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벌써 마당의 목련나무 꽃망울이 제법 도톰하게 보인다. 이렇게 나른한 주말의 오후엔 누워 있기도 무료해 창고와 욕실에 아무렇게 포개 둔 꽃나무와 화분을 꺼내 놓고 먼지를 털고 물을 주며 손질을 해본다.

겨우내 무관심했던 화초들에게 봄을 알려주고 싶기에.

생명이 움돋는 초봄이 되면 중학교 시절 심한 빈혈로 학교를 오갈 때 나는 하늘이 노랗고 다리에 힘이 풀려 종종 길섶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를 쳐다보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하긴 그 시절 여유롭게 살았던 사람들이 그리 많았을까만, 내가 자취하던 서민 가옥이 빼곡했던 이웃 중에 잘 지은 양옥집이 한 채 있었다.

담장을 따라 삥 둘러 개나리가 한창이고 잘 가꾸어진 화단에는 이름 모를 꽃들과 철쭉, 그리고 박태기나무 몇 그루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부러운 것보다 저 집 사람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딴 세상 사람들이려니 생각을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어찌해서 인근 중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시내로 유학을 나왔겠다.

수업료를 벌겠다는 일념으로 신문보급소를 찾아가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심한 성격 탓에 신문 뭉치를 든 열다섯 살의 나는 누가 알아볼까 봐 교모를 푹 눌러 쓰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뛰어다녔다.

그때만 해도 비닐이 귀해 비가 오는 날에도 신문이 젖지 않도록 봉투에 넣어 돌리는 요령을 몰랐다.

아니 보급소에서 세어 준 신문 부수만 확인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나왔으니.

꼭 철 대문이 있는 우리 동네 그 양옥집에 가면 초인종을 누른 다음 주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신문을 주인에게 직접 전달해야만 했다.

검은 안경테를 쓴 풍채 좋은 집 주인은 아마 큰 회사 사장님이거나 고위 공직 신분을 가진 분이라 여겨졌다.

그날따라 목련 꽃봉오리가 하나둘 벙그는 데 봄비가 질척거리며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비 정도로 여겼는데 제법 옷이 젖게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신문을 다 돌리자면 예닐곱 집이나 더 남았는데 나는 비 노배기를 한 채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대부분 이런 경우 바깥주인이나 무표정한 50대 중년 부인이 나오기 일쑤였는데 웬일인지 "잠깐만 기다려요" 하는 소리와 함께 박꽃처럼 얼굴이 흰 내 또래 여학생이 나왔다.

그리고는 비에 젖은 내 모습을 안 됐다는 듯이 바라보며 "이거 쓰고 가세요. 새 우산은 아니래도 그냥 쓸만할 거예요. 그리고 도로 가져오지 않아도 돼요"한다.

그 시절 우산을 그냥 받는다는 건 언감생심이었지만 나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머리만 숙여 보이고 후다닥 골목을 뛰어나왔다.

언젠가 그 여학생과 마주치게 되면 꼭 "고마웠어요" 이 말을 해야지 하고 속으로만 벼르고 지나다 그 일도 시나브로 잊고, 우산은 결국 돌려주지 못했다.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최종진 충주효성신협이사장·전 충주문인협회장

이미 아람드리가 되었을 목련나무 그 옛 골목이 이제 불현듯 생각나는 것은 비가 내리는 탓일까?

아니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가사처럼 그 소녀도 중년을 훌쩍 넘어 나처럼 어디서 늙어가고 있을까? 당최 궁금할 따름이다.

오늘도 목련꽃이 피어 날 그날을 기다리며 서둘러 난 뿌리를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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