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임기 말까지 인사권을 행사하겠다." 청와대 측 얘기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를 부동산 매매계약에 빗대 받아쳤다. "대금을 다 지불한[지급한] 상태다. 곧 들어가 살아야 하는데 [매도인이] 집을 고치는 것은 잘 안 하지 않나." '대선 후 인사를 동결하는 게 관행이자 순리'란 당선인 측의 시각에 대해 청와대 측은 '과거 황교안 대행도 마지막까지 인사를 단행했다'는 논리를 폈다.

신구(新舊)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청와대 측은 석패(惜敗)에 대한 반발심에 그 원인이 있고, 당선인 측은 신승(辛勝)의 겸허함 상실, 아니 오만(傲慢)에 있다. 양측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양상이다. 청와대 측은 5월 9일 모든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당선인 측은 다음날 권력을 쥔다. 사람이나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이며 강제적 능력 말이다.

청와대 측은 아직도 촛불 민심이 열화(熱火)인 줄 믿는다. 다 식고 재만 남았는데 말이다. 헛것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망자계치(亡子計齒)'라 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고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철저한 흑백논리에 취해 휘두른 권력을 미리 내려놓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부정 평가 1위가 '당선인에 비협조(19%)'라 조사됐는데도 말이다.

여기에 '당선인을 윤석열 씨'라 칭하며 '망나니들 장난질에 무릎 꿇지 않겠다.'라는 최강욱의 막말이 당선인 측과의 맞대결을 부추겼다. 아직 국가원수는 아니지만, 도덕과 윤리를 저버린 표현이며 예비 대통령 모독이다. 제 얼굴에 똥칠이기도 하다. 무도 벨 수 없는 무딘 칼의 자루를 쥐고 쇠 파이프를 베려는 몽매한 양상이다. 민주주의에서 단 한 표라도 지면 분명한 패배다. 근소한 표 차를 들이대지 말고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해야 한다. 패배자들은 반발심이 당연하다고 하지만, 많은 국민은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보다 역겹다.

당선인 측 역시 오만과 고집부리기는 마찬가지다. 패자를 위로할 사람은 승자다. 오히려 승자독식의 행태를 보인다. 권력을 원시 수렵 시대에 몇몇 사수가 깊은 산속을 뛰어다니며 화살로 잡은 멧돼지로 여긴다. 그 멧돼지에 칼을 들이대며 요리를 준비한다. 승리에 도취해 점령군 행세를 한다. 권력을 청와대나 국민으로부터 포획하지 않았다. 오로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 권력의 채권자가 아닌 채무자다. 잘 쓰고 임기가 끝나면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상환해야 하는 고율의 빚이다.

당선인 측은 문 정권의 실패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행태를 보면 답습이 우려된다. 과거 대통령들의 기대치(80% 안팎)보다 낮은(55%) 국정 수행 전망치가 이를 예측한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구호가 왠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우를 범할 수 있다.

통치자는 권력을 천년만년 쥘 수 없다. 때가 되면 내려놓아야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영국 역사학자 존 액턴의 말은 진리다. 갈 사람이나 오는 사람 모두 이 같은 진리를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비난의 화살은 양측 모두 맞아야 한다. 대화를 통한 협의나 타협의 실패는 누가 더 실패의 원인을 제공했는가의 차이를 떠나 양측에 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기에 신구 갈등은 국내, 외적으로 볼썽사납고 추잡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삼위삼거(三爲三去)'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세 번 벼슬하고 세 번 물러나다.' 벼슬의 진퇴를 영화나 두려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명재상 손숙오(孫叔敖)의 이야기다. 세 번 재상에 오르고 세 번 물러났으나 그때마다 언행과 마음의 변화가 없었다. 영웅심이나 우월감을 느끼지 않은 채 순리대로 벼슬을 지냈다. 물러날 때는 두려움이나 좌절감, 근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 재상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영예나 치욕과 무관했던 셈이다.'넘버 투(number two)'임에도 권력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함을 유지해 세 번의 재상을 지낼 수 있었다. 참으로 정치권력자를 위한 귀감이다.

왜 우리 대통령 사에는 이런 아름다운 역사가 없는가? 총살, 본인이나 자식 감옥행, 자살 등 암울한 대통령 잔혹사만 있는가 말이다. 자칫 이번에도 대통령 잔혹사가 이어질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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