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긍정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한발짝 나아가요"

2019년 쿠바 아바나 의학대학 학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중부매일 박은지 기자]초등학교 졸업후 대안 중학교를 다니다가 자퇴한 10대는 어떻게 삶을 그려갈까. 퍼즐과 소설책, 기타와 작곡에 빠졌던 10대는 뉴욕, 쿠바, 스페인으로 다니며 끊임없이 탐구하고 공부에 매달렸다. 30대가 된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에서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다. 제천에 본가를 두고 있는 1993년생 김해완 작가가 주인공이다. 정규 학교교육과정을 밟지않고 고미숙 작가가 운영하는 '남산강학원'과 '감이당연구소'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끊임없이 공부에 매진한 그는 5권을 책을 냈다. 최근 '돈키호테, 끝없는 생명의 이야기'를 출간한 그녀에게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편집자

"저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유랑'이다. 이십대 초반에 청년들의 유학을 지원해주는 연구실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해외에 나가게 됐고 8년간 외국 이곳저곳에서 공부 중이다. 작가이자 의학도로 살고 있는 저는 인문의역학 연구소이자 대중지성 공동체인 '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인문학을 공부했다. 인문학이 일상의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에 방점을 두고 글을 써오고 있다."

김해완 작가는 10대때 자칭 '중졸 백수'를 자처하며 인문학을 공부하며 끊임없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냈다. 그는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 의과대학(La Universidad Autonoma de Barcelona)에 재학중이다. 정규 학교교육과정을 밟지않고 굳이 타국에서 어려운 의학공부를 하게 된걸까.

 

"쿠바에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의학을 공부했다. 쿠바 의학은 마을주치의를 필두로 각 동네마다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일차 진료' 의료제도와 맞물려 있다. 동네 진료소에 가보면 그 마을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일상과 희로애락, 세대를 가로지르는 소통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팬데믹 이후 불가피하게 장소를 옮겨야 해서 2021년부터는 바르셀로나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인생공부를 하는데 제격이었고 의학공부가 생각보다 몸에 잘 맞아서 재밌게 매진하고 있다."

김 작가가 최근 출간한 책 '돈키호테, 끝없는 생명의 이야기'에는 고전소설인 돈키호테를 해부하듯 그리고 있다. 책은 돈키호테와 산초 등 등장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친절히 설명해주며 흡사 참고서같은 역할을 기꺼이 자처하고 있다. 왜 수많은 고전소설 중 돈키호테에 꽂히게 된 것일까.

"이번 책은 지난 2015년에 출간한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의 전면 개정판이다. 십년전 연구실에서 고전을 소개하는 책 시리즈를 기획하며 우연히 읽게 됐는데 그 이후 가장 사랑하는 책이 됐다. 17세기 초 스페인 라만차 지방에서 기사소설에 빠져 살았던 늙은 귀족이야기가 '돈키호테'다. 신체와 정신의 한계, 시대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 이 소설은 소위 '루저'의 모험이 계속될수록 생기를 띈다는 점이 놀라웠다. 결말은 돈키호테가 결투에서 패하고 제정신을 차려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 실패덕에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된다. 그 대목이 이 책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의학도인 김작가는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인문학과 의학이 교차하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뭘까.

"제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생명의 힘은 한계를 긍정하는 과정 속에서 샘솟는다는 것이다. 이 한계의 긍정은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더 거대한 세상을 인식하고 접속하는 과정에서만 가능하다. 한계 투성이 존재로 생기 넘치는 건강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무지를 깨뜨리고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타자와 만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모험은 직접 떠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치유의 길과 지혜의 길은 궤를 함께 하고 있다."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하며 자유분방하고 핵심이 명확한 사고를 전해주는 저력은 김해완 작가의 성장배경과 무관치 않아보였다. 그에게 '남산강학원과 감이당 연구실' 그리고 부모님은 어떤 의미일까.

"정규 학교교육과정인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고 십대 후반 연구실에서 인문학 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든든하 무기다. 밀도높은 텍스트의 맥락을 파악해내는 문해력은 세상의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사유를 조직해내는 글쓰기는 사회로부터 일방적으로 정의당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된다. '남산강학원과 감이당 연구실'에서의 공동체 생활은 관계의 중요성을 익혔다. 주위의 관계를 건강하게 가꾸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성취에 급급하기보다 순간의 배움의 기쁨을 최선을 다해 누리며 살아야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것은 연구실 선배와 동학들이 몸소 가르쳐준 것이기도 하다. 부모님께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희 부모님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학벌이나 취직보다 '지성을 먼저 훈련하고 싶다'는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이해해주셨다. 혹시라도 제가 훗날 취직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까봐 전혀 불안해하지 않으셨다. 저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저희 부모님을 닮고 싶다. 삶에 대한 이해와 믿어주는 마음을 베풀고 싶다."

현재 김해완 작가의 아버지는 충북 제천의 '남제천 봉화재 마을신문' 편집국장인 김영수씨다. 경상국립대 사회과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충북 제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마을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

김 작가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MZ세대 혹은 알파세대(2011년생 이후 출생)에게 공부와 교육, 진로결정 등에 대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꿈'이라는 말에 중독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을 꾼다는 것은 아름답게 들리지만 그 말이 청년들의 정신을 갉아먹기도 한다. 꿈이 간절해질수록 놓쳤을 때 상실감과 억울함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또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지난 과정이 행복한 기억으로 치환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꿈을 깨는 일'을 지향한다. 원대한 꿈을 품고 길을 떠나지만 최종적으로 자신의 꿈이 무지의 거울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갔던 돈키호테의 모험처럼. 청년기는 생계를 꾸릴 수단과 내 정신세계의 초석이 될 지식을 갈고 닦는 시기다. 이 훈련과정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중간다리가 돼야 한다. 꿈을 비울 때 온 세상과 만날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배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모르는 세상과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고, 고통과 갈등이 치유로 수렴되는 길을 탐구하고 싶다. 이 배움의 길을 함께 하려는 친구들을 최대한 많이 찾아내고 싶다. 지금도, 나이든 후에도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돈키호테, 끝없는 생명의 이야기' 中


'광기와 생기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내 생명활동에 유리한 쪽, 더 나아가 나와 함께하는 상대방의 생명활동에도 유리한 쪽을 택하려는 힘이 생기다. 그러나 광기는 반대를 택한다. 모든 생명체는 살아가라는 명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행한다. (p.94)'

'나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만큼 나는 점점 더 식상한 존재가 된다. (중략)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유일무이한 데다가,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은 남들보다 뛰어남을 증명해 내는 것보다는 남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삶의 지혜는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순간 감쪽같이 사라진다. (p.190)'

''공간이 조각조각 쪼개져 마음의 공감능력을 고갈시킨다면, 경직된 시간은 마음의 치유력을 틀어막는다. 정해진 트랙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도 '의미'를 잃어버리는 허약한 인생을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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