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칼럼] 김동우 논설위원

대선이 끝난 며칠 뒤 모처럼 페이스북을 들여다봤다. 페이스북 친구가 올린 글과 댓글이 흥미롭게 눈길을 끌었다. 사실 흥미롭기 이전에 우리 정치 민도와 악습을 보여주는 듯해 뒤끝이 개운치 않았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본격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이런 악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 수준이 뇌리를 강하게 때렸기 때문이다.

"뉴스를 안 본다. 시사프로그램이 싫다. 내가 멈춰도 시간은 간다." 이어 1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5년은 찰나^^" " 저도 뉴스 안 봅니다." "저도요." "모든 것이 저와 같네요. 저 역시 TV, 인터넷 뉴스를 전혀 보지 않습니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 "뉴스 짜증 나죠" "지금 뉴스 안 보는 사람들 많을 겁니당~ 저 포함 " "눈과 귀를 꿰매고 싶다? "같은 맴"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진보 성향자나 친문(親文)의 글이다. 이들에게 지난 대선은 질 수 없고 져서도 안 되는 선거였다. 그러나 가슴 아픈 패배였다. 0.73% 포인트 차이, 박빙의 석패(惜敗)였기 때문이다. 친문이 패배를 인정치 못하는 이유다. 달리 표현하면 차기 정부에 강한 부정이며 배척이다.

정권 교체기인 요즘 정치 뉴스가 방송 시간과 지면을 도배할 정도다. 앞다퉈 정권 인수위원회의 활동, 총리 등 내각 인선 준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인사권 행사와 관련된 청와대와 인수위의 갈등 등 새 정부 출범을 위한 차기 정부의 발 빠른 움직임을 보도한다. 언론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중도이든 말이다.

문제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 낙선으로 속상하고 억울해 미치겠는데 차기 대통령과 측근의 이런 모습이 눈에 들어올 리 천부당만부당하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은 압승(壓勝)이 아닌 신승(辛勝)이다. 차기 정부를 점령군으로 생각하며 오만의 극치라고 비난한다. '빨리 방 빼라'는 인수 작업과 국민의 뜻을 명분으로 현 정권을 무시하는 행태가 보기 싫은 거다. 차기 정부 인정에는 전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일부는 울화통과 짜증을 참지 못해 TV에 리모컨을 던지거나 신문을 찢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진영 논리의 틀에서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언론은 억울하다. 언론이 이렇게 진영 논리에 의해 뭇매를 맞아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언론은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보수 논조에서, 진보언론은 진보 논조에서, 중도언론은 중도 논조에서 각각 사실과 정보 전달에 객관성을 유지한다. 문제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아닌 지지자의 정치의식과 관심에 있다. 공정 게임에도 승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패자의 뺑덕어미 심리와 패자를 아우르지 못하는 승자의 점령군 행세가 충돌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언론, 특히 뉴스 기피는 정치적 배타성이 강한 모습, 아니 추태다. 이는 우리 정치사에 깊게 팬 상호 불신의 골이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질시도 이런 정치사에 한몫한다. 합법적 절차에 의한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니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에 사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타당성이 있는 배척(排斥)이라면 바람직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무모함, 정권 교체기 때 승리에 도취한 점령군 행세와 오만, 저항할 줄 모르는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 등이 판치는 정치 상황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가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각종 정책 실패로 뭇매를 맞기 시작할 때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누가 올린 글에 수십 건의 댓글이 이어졌다. "앞으로 뉴스 안 본다." "봐도 정치 뉴스가 끝날쯤 TV를 본다." "정치면은 제외하고 신문 본다." "난 신문을 뒷면부터 본다." "정권 말까지 정치 뉴스 안 보고 안 듣고 살란다." "신문 끊었다." "꼴도 보기 싫다." 이 역시 문 정권에 대한 강한 부정이며 배척이었다. 이들은 분명 보수이거나 반문(反文)이다.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김동우 논설위원

어찌 그리도 우리 정치의식의 양상이 칡과 등나무를 닮았나? 진보는 왼쪽으로 나무를 감아 올라가는 칡과 같다. 보수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등나무와 같다. 서로 얽혀 나무를 감고 올라간다. 이런 모습에서 '갈등(葛藤:칡 葛, 등나무 藤)'이란 단어가 나왔다. 한마디로 우리 정치사는 '갈등의 역사'라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 정치사가 실마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히고 꼬인 칡과 등나무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말이다.

차기 정부는 통합과 화합에 언행 불일치를 보이면서 현 정부와 차별화를 추구한다. 반면 현 정부는 '어디 두고 보자.'며 보복의 칼을 갈고 있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신.구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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