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윤희 수필가

2억 5천만 년 전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울진에 있는 성류굴이다. 초입부터 시선을 끈다. 오른쪽으로 왕피천을 끼고 동굴 입구까지 웅장한 돌 조형물이 길을 안내한다. 동굴의 자연미를 형상화한 듯 거친 돌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사진으로만 얼핏 보면 이탈리아 어느 한 곳쯤으로 착각할 만큼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소독된 헬멧을 쓰고 굴로 들어서려니 낮은 천장이 먼저 나그네를 맞으며 한마디 한다. '수억 년 세월을 들여다보는데 어찌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느냐'는 거다. 사람의 지위와 허세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엿보인다. 낮고 겸손한 자세가 아니면 자연현상의 장엄함을 마주할 수 없는 것이 동굴의 생리가 아닌가 싶다. 되잖게 굴다가는 머리 깨지기에 십상이다. 할 수 없이 허리를 바짝 낮추고 고개를 숙여 엉금엉금 기다시피 들어가니 진중한 마음이 된다. 비로소 천장을 높여 똑바로 서서도 걸을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한다.

제1광장 '연무등석실'에서부터 제12광장인 '보물섬'에 이르기까지 은하천, 미륵동, 3.1기념탑, 지옥동, 용신지, 만물상. 초연광장 등 다양한 이름과 함께 각종 종유석이 형용할 수 없는 형상을 빚어내고 있다. 용궁, 사랑의 종, 법당 아기불상, 성모마리아상, 산타클로스상, 미녀상, 절묘하게 이름을 붙어 놓았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때로는 머리를 조아리고, 몸을 굽히면서 내 면적을 좁혀야 하는가 하면, 중간중간 허리 쭉 펴고 천천히 감상할 여유가 주어지기도 한다.

천장에서 종유석이 아래로 향하고, 바닥에서는 석순이 위로 솟아오르고 있다.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겨우 0.4㎜씩 자라 한 몸이 된다. 이것이 석주다. 한 방울 한 방울 물이 모여 이루어 낸 마음의 합일이다. 수억 년 기다림의 결정체를 본다. 웅대하고 찬연하다. 자연현상은 사람이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이 동굴의 현상은 시생대(始生代)의 변성퇴적층이 이룬 것이라 한다. 장구한 그 세월의 흔적이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증거하고 있는데 어찌 사람이 절로 몸을 굽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숙연해진다. 100세 넘기기도 어려운 것이 인생인데 그 짧은 기간, 성과를 내겠다고 앙앙대며 집착했다. 미물만도 못한 것이 인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천연기념물 제155호, 울진 성유굴은 일반 석회암 동굴과 다른 특징이 있다. 깊고 넓은 동굴호수가 발달해 있다. 수만 년 전 지금보다 낮았던 해수면이 지각변동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동굴 옆을 흐르는 왕피천이 침수하여 생긴 호수다. 호수에 잠긴 석순은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동굴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수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임진왜란 때다. 주민 500여 명이 피신해 있는데 왜군이 돌로 입구를 막아 모두 나오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한다. 굴속에 잠긴 비화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성류굴은 그 당시 성류사에 있던 부처를 이곳에 피신시킨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어둔 굴을 빠져나와 옆으로 흐르는 왕피천을 바라본다. 푸르른 물결이 유유하다. 도도하다. 생각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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