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나인문 대전세종본부장

'답설야중거 부수호란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도 발걸음을 가벼이 하지 마라. 오늘 나의 발걸음은 언젠가 오게 될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라는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다. 한순간, 한걸음, 한마디에도 신중을 기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봉록을 받는 공직자라면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할 교의(敎義)가 아닐 수 없다.

'행정수도'를 기치로 내건 세종시의 민낯을 보노라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함께 꿈꾸는 행복도시 세종, 시민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천년을 만들어가겠다'는 이춘희 세종시장의 공약이 허공만 맴돌고 있으니 갑갑할 따름이다.

백년대계를 넘어 천년을 말하지만 '계획도시 세종'에는 무계획적인 것들이 자주 눈에 띈다. 애초부터 계획이 있었는지조차 의구심마저 자아낸다. 생활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 자동집하시설인 '크린넷'은 심한 악취, 잦은 고장에 이어 콜라 캔(깡통)만 갖다 대도 개폐구가 열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10여년째 고쳐지지 않고 있어 전국적인 비웃음을 사고 있다. 이러고도 '첨단기술이 집약된 스마트시티'라고 내세울 것인지 어이가 없다. 맷돌을 돌리려는데 손잡이(어처구니)가 없고, 뜨거운 가마솥뚜껑을 열려 해도 손잡이(어이)가 없는 형국이다.

세종세무서가 세종비즈니스센터 6층에 임차해 있다가 지난해 6월 14일 세종시청 앞으로 이전한 지 10개월이 됐지만, 시내버스 안내음성과 버스노선은 아직도 예전의 위치를 안내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로 지정된 세종시에 가장 '스마트 하지 않은 버스정류장'이 있어 시민들이 겪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엉뚱한 곳에 승강장을 만들어놓아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10여m를 달려가게 만든 승강장은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황당한 버스승강장으로 인한 폐단을 끊어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조차 없다는 점이다. 세종시는 또 얼마 후 '최첨단 자율주행버스'를 운행하기 위해 다각적인 시험을 벌이고 있지만, 그 이전에 기본적인 교통안전 시설물부터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갈이 나오는 이유다.

나인문 대전세종본부장
나인문 대전세종본부장

총 공사비 1116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내 최장의 보행교인 '이응다리(금강보행교)'를 건설해 놓고, 정작 다리 아래에는 꽃씨가 잘 발아되도록 한다는 취지로, 성분조차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파랑색 물질을 뿌려놓아 금강의 수생태계 파괴마저 우려되고 있다. 사정이 그런데도 담당 치수방재과장은 시공사인 LH에 책임을 떠넘기며 "뭐가 문제냐"고 외려 큰소리를 치고 있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진흙이나 숯불에 떨어진 것처럼 백성이 심한 고통을 겪는 '도탄지고(塗炭之苦')'는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공복(公僕)들의 일탈에서 비롯됐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참으로 갑갑하다. 그 진원지가 세종시여서 더더욱 답답하다. 100년은커녕 1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세종시가 대한민국의 행정수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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