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남녘의 유채꽃은 노랗게 물들고 이미 매화는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바람은 아직 차지만 분명코 봄은 왔다. 가슴 조이던 동해안의 역대 급 산불도 꺼졌다. 허지만 나라 안의 '코로나 팬데믹'은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나라밖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무고한 생명이 무한정 스러져가고 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20대 대선은 이미 역사의 장이 되어 지나간다. 대통령의 집무실도 청와대의 시대를 마치고 용산으로 옮겨가기로 결정되었다. 이긴 쪽은 기쁨 속에서 후속조치에 바쁘고 진 쪽은 잘잘못을 따지며 체질개선의 각오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여야가 필사적인 아픔을 통한 대변신이 꼭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환히 알고 있다. 세계를 지배한 로마의 개선장군의 승전퍼레이드는 장엄하고 화려하였다. 승리의 주인공은 얼굴을 붉게 칠하고 네 마리의 백마가 끄는 전차에 올라 마치 신이라도 된 듯이 열렬한 환대를 받는다. 마차의 뒷좌석에는 노예 한 명이 동승하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을 개선식 내내 속삭인다. "죽음을 잊지 말라!"는 말이다. 삶의 영광이 절정의 순간에 이르렀어도 죽음 또는 죽음 같은 추락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이다. 그 섬뜩한 진실을 가장 비천한 신분인 노예의 입으로 일깨워 준다. 메맨토 모리!

고구려의 9대 고국천왕(재위 BC 171~197)은 국내외 정세를 안정시켜 국력을 키운 치적을 쌓았다. 고국천왕은 처음에 '안류'에게 중책을 맡겼으나 '안류'는 자신보다 더 훌륭한 인재라면서 압록강 부근 출생의 '을파소'를 추천한다. '을파소'는 2대 유리왕의 명신인 '을소'의 후손이고 '을지문덕'과 '을밀선인'의 선조가 된다. '안류' 역시 아름다운 양보와 천거로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된다. '을파소' 선생은 단군조선 시대로부터 전해 온 '366사'라는 책을 엮어 '참전계경(參佺戒經)'이라는 고구려의 필독서를 발행한다. 이를 근거로 조의선인, 참전선인, 당금무배 등의 국가동량들을 양성하니 고구려는 머지않아 동북아시아의 주인이 된다. 유태인에게 탈무드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참전계경이 있어 깨달음의 신선도를 대중화할 수 있었다. 참전계경 78번째 사항은 나라의 정치를 맡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가르치고 있다. 임금과 신하라는 단어를 대통령, 공직자로 대신하면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빛나는 가르침이다.

'제78사 패정(佩政)' 패정이란 나라의 정사를 맡는 것이다. 임금이 신하를 믿고 정사를 맡기면 신하는 임금을 대신하여 정사를 맡되, 뛰어난 인재를 구하고 등용하며 자기보다 어진 사람이 있으면 임금께 간곡히 아뢰어 그 사람이 자기를 대신하여 정사를 맡도록 해야 한다.

(佩政者 爲政也 君信臣而任政 臣代君而爲政 求俊人而進用 有賢於己者則 苦諫而替任)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의 지식인들은 배운 그대로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의 시대요 활짝 핀 문명의 시대이지만 과연 누가 '안류'처럼 국상의 자리를 양보 할 수 있을까? 서양으로 보면 잦은 국난 속에서도 국체를 잘 보존했던 '명상록'의 저자인 로마 제16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 황제의 시대와 비슷한 시기이다.

학자들은 인간의 과도한 욕망이 마구 자연을 파괴하자 숙주를 잃은 바이러스가 인간을 새로운 숙주로 삼아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2~3년에 한 번씩 새로운 판데믹이 유행한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인류는 순식간에 번지는 질병으로 대량으로 죽거나, 불어 난 바닷물이나 화마에 갇혀 한꺼번에 죽어야한다. 또는 폭탄의 세례 속에서 살해되어 하나뿐인 귀한 생명을 속절없이 잃어야 한다. 인류 전체의 존망이 거센 바람 앞의 등불이다. 메맨토 모리!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이제는 하늘, 땅, 생명 모두가 하나라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생명은 이웃되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존재라는 우리 고유의 '접화군생(接化群生)'의 깨달음만이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릴 것이다. 하늘, 땅, 사람은 하나이며 뭇 생명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한민족의 '상생과 홍익'의 철학을 누구라도 채택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지구는 살아날 것이다. 이제는 무릇 공직자이던 아니던 사람이라면 '늘 이웃과 함께, 지구와 함께' 라는 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이보다 절절한 깨달음의 현장은 어디에도, 어시대에도 없을 것이다. 이 값비싸고 귀한 기회를 살려내야 한다. 지구가 평화롭지 않다면, 이웃이 평화롭지 않다면, 나 또한 결코 평화로울 수 없다.

메맨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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