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황규리 청주시 가경동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초록의 나무들이 산천을 물들이고 이름 모를 새싹들도 봄을 환영하듯 가녀린 몸을 흔들어 댄다. 4월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햇볕도 많이 따갑지 않다. 불어오는 바람도 쌀쌀함의 무게가 빠지고 상쾌함으로 채워지고 있다.

4월 한 달, 봄을 만끽하고자 출근길에 '걷기'를 시작했다. 겨울 동안 굳어지고 닫혀진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마음먹고 출근을 시작한 첫날이었다. 아파트 주변을 벗어나 봄 공기를 흠흠거리며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턱 하니 마주친 인도 위 갈색 물질, '강아지똥'이었다. 똥은 두 덩이가 있었던 모양인데 그중 한 덩이는 누군가 밟은 듯 뭉그러져 있었다. 나무, 꽃, 풀과 같은 주변 풍경에 시선을 옮기며 어린아이 같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달아나고 강아지똥을 밟으면 어쩌나 찝찝한 마음에 땅만 보고 걸었다.

이튿날, 자동차 시동을 걸까 말까를 고민하다 '한번 꺼낸 칼, 무라도 잘라야지'하는 마음에 강아지똥의 방향을 피해 돌아 걸었다. 다행히 강아지똥은 만나지 않았지만 편의점 앞으로 돌아가야 했다. 24시간 운영을 해서일까? 밤새 수많은 사람들이 버려놓은 담배꽁초가 주변에 빼곡했고 종이컵과 캔, 음료수병이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걷기 셋째 날, 강아지똥과 너저분한 담배꽁초를 피해 공원길을 선택했다. 공원 주변은 깨끗하고 봄의 상쾌함을 만나겠지 기대했지만 몇 미터 간격으로 쓰레기를 내놓아 쓰레기봉투, 종이박스, 각종 불법쓰레기로 불쾌하고 피하고 싶었다.

걷기 넷째 날, 골목길은 안되겠다 싶어 큰 대로를 선택했다. 강아지똥과 쓰레기의 불쾌함에서 벗어난 것 같아 안심했지만 신호등을 세 번 건너야 했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건널 때는 몰랐는데 신호등 몇 걸음 뒤에서 초록불로 바뀌니 뛰다시피 걸었다. 신호등을 다 건너고 헉헉거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목발이라도 짚었거나 걸음이 불편했다면 시간 내에 신호등을 건널 수 있었을까?" 장애인에게 신호등 건너기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포기의 구간 같았다.

황규리 청주시 가경동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황규리 청주시 가경동행정복지센터 맞춤형복지팀장

걷기 다섯째 날, 아침 산책을 나왔는지 입마개를 하지 않은 커다란 개를 끌고 오는 행인을 만났다. 강아지는 좋아하지만 큰 개는 무서웠기에 피하면서 "큰 개는 입마개를 하셔야 해요."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말 "얘는 괜찮아요." 타인은 이미 무서웠는데 얘는 괜찮다는 말에 걷기를 통해 봄의 상쾌함을 만나고 싶었던 나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작은 분노마저 일었다. 강아지똥, 담배꽁초, 불법쓰레기,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신호등, 입마개를 하지 않은 개, 이 모두는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들이다.

걷기를 통한 배움이 있다면 이제 우리의 삶은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뜻한 봄, 타인을 위한 작은 행동 실천으로 봄맞이 문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

키워드

#기고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