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친구 아버님의 백수연에서 사회자가 한 세기를 살아온 소감 한 말씀을 부탁드리니 "오래 살아서 자식들 고생만 시켰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일거리를 만들어준 가족들과 맘 주고받으며 지켜준 친구들이 늘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 내 영혼 잘 보살펴준 하늘이 고맙지요. 해로하지 못하고 먼저 떠나보낸 아내에겐 죄스럽고, 나이만 들었지 사람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산 것이 부끄럽습니다. 오늘까지 살아온 날들은 그저 '나그네길'이었습니다." 그동안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씀에 박수가 터진다.

나그네, 무슨 관계가 있는 진 모르지만 나그네라는 말이 왠지 '그네'란 말에서 비롯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십 미터의 그네 줄을 잡고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면서 창공을 힘차게 가르며 더 높이 날아 더 멀리 보면서 보다 새로운 것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떠나게 하던 그네 타기가 많은 도전자들에게 더 길고 더 튼튼한 동아줄을 준비하게 했으니 말이다.

인간 세상에 왔다가 부모, 아내와 남편, 자녀, 일터와 친구, 형세와 세정 따라 명당 찾아 뜨내기와 떠돌이로 유랑하며 흘러 돌다 넘어져서 나뒹굴고 부딪혀 닦이다가 뇌성에 자리 찾아 대반식구 복 채우다 간신히 베옷 한 벌 구걸해서 제 온데 찾아 돌아가니 아마도 세상에 나그네 아닌 이 없을 것 같다.

나그네길, 이 말은 듣는 이에 따라선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행운유수行雲流水하는 낭만적인 삶을 연상할 수도 있다. 방랑시인 김삿갓金炳淵은 자기 나름의 풍류를 즐기면서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무진의 애를 쓰며 떠돌던 나그네였고, 같은 시기에 하늘을 지붕 삼아 전국의 방방곡곡을 샅샅이 누비며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金正浩의 수십 년 나그네 인생도 그랬다.

길 떠난 나그네는 꿈이 있어 갈 곳과 돌아올 곳이 있었고, 그 사이를 오가면서 바르고 밝은 길을 밝혀주는 성현聖賢도 알현하고, 인간도리로 시비도 하며, 호구지책도 찾아보고, 목표를 향한 로드맵도 그려봤다. 그러다 마음 주고받을 인연이나 물맛 좋은 곳 찾으면 눌러앉기도 했다.

내나라 찾으려는 독립투사들이 그랬으며, 5~60년대에 중고생들의 학도병과 무전여행이 그랬고, 무대를 확장한 7~80년대 동서반구 육대주와 오대양과 열사를 누비던 목숨 건 모험의 배낭여행은 피 끓는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다. 이 나그네들이 바로 오늘을 밝혀 내일을 이끌어온 선구자들이다. 고마워하며 감사하고 존경하며 롤 모델로 따르는데 부족함이 없다.

시야를 넓혀 거슬러보면, 기원전 2~3세기에 동서 교역을 위해 개척한 4~5천km의 차마고도茶馬古道 나그네 길과 6~7세기의 실크로드Silk Road를 오간 나그네들에 이어서 15세기말에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해상 나그네 길도 그랬으며, 20세기 초에 에스키모와 살면서 극지생활을 익혀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탐험가 아문젠의 빙하 나그네 길도 그랬다.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이 나그네들의 방문록訪問錄은 찾을 수 없어도 오랜 세월 닦아놓은 길바닥에 깨알 같이 적혀 있는 걸 눈 밝은이 있어 오늘까지 빠짐없이 전해온 게 무수한 나그네들이 이겨서 다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일 것이다. 80억의 마당놀이별에서 단 한 번의 도움닫기로 상상속의 태양계를 하룻밤 나그네 길로 오가게 열어줄 그런 나그네들이 기다려지는 것은 그저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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