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국민 화가 박수근 개인전에 갔다. 박수근 하면, 1962년 '나무와 두 여인' 그림으로 나뭇잎이 떨어진 벌거벗은 나목(裸木)이다. 이번 전시에는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점의 작품이 공개되었고, 이 중 유화 7점, 삽화 12점은 미공개 작품으로 최초 공개됐다. 박 화가가 처음 미술을 접한 것은 12살 때, 장 프랑수와 밀레의 그림 '만종'에 감동을 받아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만 다니고,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조선미술전람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같은 국전을 통해 화가로 데뷔했다.

여러 해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영열 명지대 교수에게 '한국 근, 현대 미술의 이해' 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박수근은 유채화 '나무와 두 여인'에서 어머니가 아기를 업고, 등장하며 두 들 두 들 거친 기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아이 업은 소녀'에서는 단발머리 소녀가 동생을 업고, 소박하면서 거칠게 화강암 같은 질감으로 표현했다. 재작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시회에서 '근대의 꿈, 꽃나무는 심어놓고' 그림전은 일제 강점기부터 근대화까지의 전시회에서 박 화가가 그린 '나무와 두 여인', '아이 업은 소녀' 등을 또 만났다.

전쟁 직후 서울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박수근은 예술가로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미군 PX에서 일하며 그림을 팔았다. 이곳에서 번 돈을 모아 창신동에 집을 마련했는데, 창신동은 서민들이 밀집해 살았던 동네였다. 그는 이 집 마루에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판잣집은 가난의 상징과 같은 것이지만, 박수근은 작품 '판잣집'에서 따스한 색채로 사람들의 온기를 표현했다.

10여 년 전, 초중고 교과서에 나오는 미술작품은 84점이다. 국내 화가 26점, 해외화가 31점, 그리고 유물, 유적 33점으로 현대 미술가 몇 명 외에 유명한 분의 그림이 많이 빠졌다. 그런 와중에도 정선, 김홍도, 이중섭, 박수근, 백남준(원래 음악을 전공했음) 등의 그림이 교과서에 많이 나온다.

1951년 미군 부대 PX 기념품 가게에서 박완서는 점원으로 박수근은 스카프나 손수건 귀퉁이에 애인, 가족사진, 초상화를 그렸다. 1965년 5월 박수근이 작고 후, 같은 해 10월 유작 전시를 본 박완서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감동을 받고 첫 소설집 '나목'을 썼다. 이 소설은 1970년 여성동아 현상공모에 당선되어 39살에 소설가가 되었다. 박수근 화가는 생계를 위해 전매청, 한국전력공사 등 사보에 실린 삽화 등 생계형 삽화와 표지화도 그렸다.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커다란 고목을 전면에 대담하게 배치하고 그 뒤로 멀리 보이는 인물들을 그렸다. '고목과 여인'에서 검게 처리된 고목과 여인들의 치마 저고리의 색채를 대비시키면서, 죽은 나무에서 나는 새싹처럼 엄혹한 현실을 이겨내고 생활을 이어가는 생명력을 강조했다. 박수근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간결한 구도의 묘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수근 작가의 초기부터 만년까지 다양한 작품을 총망라"했다며, "이번 회고전은 일생에 다시 보기 어려운 전시"라는 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필자도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박수근 화가의 예술 세계 전부를 볼 수 있어서 기쁨이 가득하다. 박 화가는 살아서 부와 명예를 누리지 못했지만, 독창적 화풍의 작품들은 한국 미술사의 영원한 걸작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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