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국회·의사협회 패싱 '들끓는 여론'

[중부매일 나인문 기자]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충북도와 청주시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아 오송에 바이오메디컬 캠퍼스타운(이하 오송캠퍼스)을 조성하는 것과 관련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이는 애초부터 본말이 전도된 터무니 없는 사업추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충북도와 청주시, KAIST가 지난 3월 22일 도청에서 협약을 맺고 ▷첨단 바이오와 의학을 융합한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메디컬 융합인재 육성 ▷중부권 거점 난치병(암·치매) 치료를 위한 연구·임상병원 건립 등의 내용을 담은 오송캠퍼스 조성계획을 발표했지만, 정작 공공의대 설립이나 대형병원 건립을 위해서는 교육부, 보건복지부, 정부여당, 국회, 대한의사협회 등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2020년 9월 4일 합의문을 통해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한의사협회와 합의한다. ▷이 경우 대한의사협회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협약에 따라 구성되는 국회 내 협의체의 논의결과를 존중한다. ▷의대 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고 합의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2020년 9월4일 작성한 의정합의문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2020년 9월4일 작성한 의정합의문


복지부는 또 협의체를 운영할 때 사회적 논의를 위해 의사단체와 이해관계자 외에도 학계나 시민사회, 건강보험의 가입자들, 환자의 의견 등을 폭넓게 청취하면서 국민과 의료계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발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과 의사협회가 합의한 사항인 만큼, 의대정원 확대나 공공의대 설립 등 의사 인력에 관한 사항은 의정협의체에서 보건복지부와 의협이 협의해야 할 사항이라는의미다.

하지만 충북도와 KAIST는 이러한 절차나 사회적 합의과정을 모두 생략한 채 오송캠퍼스 조성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지역 의료계와 대학, 전공의 등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실제, 교육부 관계자도 본보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한 의전원이나 공공의대 설립 등의 문제는 대한의사협회, 국회, 보건복지부 등과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진행하기가 어려운 문제"라며 "특히 전국 각 대학들이 학령인구 감소로 존폐 위기에 놓이면서 앞다퉈 공공의대 및 의전원 신설 등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나 대학이 희망한다고 해서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대학이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어느 대학이라고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충청권 내에서도 공공의대 및 의전원 신설 등을 희망하고 있는 대학이 있다"며 "교육부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나 의전원 설치 등의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해당 지역의 의료환경, 지역 의료편중 문제, 해당 대학의 교육과정 등 종합적인 상황을 면밀히 따져서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오송캠퍼스의 경우 인근에 충북대학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이 이미 운영되고 있는데 불과 15~17㎞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지역에 또 다시 1천100병상 규모의 대형병원을 비롯해 연구·임상병원 등을 건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또 "충북도와 KAIST의 협약은 뒤늦게 언론을 통해 전해 파악했다"며 "사전에 어떠한 협의나 문의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해 충북도와 KAIST의 오송캠퍼스 조성 계획이 선거를 앞두고 즉흥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뒷받침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현재로서는 2020년 공공의대 설립 문제 등으로 대한의사협회의 갈등을 겪은 이후 작성한 '의정합의문'에서 한발짝도 진전된 것이 없다"면서 "의사정원 확대 및 의전원 설립, 공공의대 건립 등의 문제는 특정대학이나 자치단체의 뜻을 수용할 수는 없고, 의정합의문에 따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충북지역 한 전공의는 "상식이 있는 위정자라면 KAIST 본원이 있는 대전에서는 인가가 불가능한 의과대학을 충북에 어떻게 유치하겠다는 것이냐"며 "선거철에 앞두고 서로가 충북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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