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의 설익은 정책에 등 터지는 지역 의료업계

[중부매일 나인문 기자] KAIST(한국과학기술원)가 충북도와 청주시로부터 1조 원대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아 오송에 바이오메디컬 캠퍼스타운(이하 오송캠퍼스)을 조성하려는 것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는 목소리가 높다.

충북도와 청주시의 열악한 재정형편으로는 협약대로 이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만 아니라 충북 도내 지역 간 의료서비스 불균형을 야기하고, 자칫 지역 의료계의 황폐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에 기인한다.

특히 의대정원 확대를 필요로 하는 의전원이나 공공의대 설립은 교육부, 보건복지부, 정부여당, 국회, 대한의사협회 등과도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오송캠퍼스 조성를 강행할 경우 지역 의료계 총파업 등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의료서비스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도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송캠퍼스 조성에 대한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넘어 개탄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어 주객이 전도된 충북도의 설익은 정책발표와 안이한 상황인식에 대해 비난하는 소리도 크다.

교육부·보건복지부나 대한의사협회, 국회 등과 충분한 협의를 거친 뒤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데도, 선거를 앞두고 일단 "던져 놓고 보자"는 식의 행정 행태를 바라보는 의료계 안팎의 시선도 곱지 않다.

충북대 의대 교수진은 "(오송캠퍼스 조성은) 한마디로 망상"이라며 "그동안 1권역 1국립대 원칙은 건국이래 깨진 적이 없다. 예컨대, 서울·경기에 서울의대 한 곳, 대전·충남에 충남의대 한 곳을 50년 이상 육성해 지역의 교육·연구·진료의 근간을 세워왔다. 그런데 인구 80만명인 청주에 충북의대와 대학병원이 있는데, 한 곳을 더 인가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충북 도내만 하더라도 충주·제천·단양 등 북부권은 물론, 보은·옥천·영동·괴산 등 의료 취약지가 많은데, 충북의 수부도시인 청주에 중복 투자를 하는 것은 아무런 명분도 없고, 의사협회 등의 반발을 불러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충북 지역 전공의들도 "대전에 본원에 있는 KAIST를 끌어와 1조 원대의 예산을 들여 편중 지원한다면 충북지역 국립대와 사립대는 모두 망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며 "학령인구 감소로 통폐합의 기로에서 존폐를 걱정하는 지역의 대학들은 외면하고 KAIST에 엄청난 예산을 지원한다면 대학교육의 틀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행정중심도시복합청, 세종시와 여러차례 양해각서(MOU)와 합의각서(MOA)를 맺고도 10년 넘게 추진해 왔던 약속을 파기한 채 충북에 갖은 요청을 다하다가 충북에서도 기대만큼 과실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KAIST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충북에 남아 있는 대학의 교수진과 학생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떠안게 된다"며 "지역거점대학과 사학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래 어떤 지자체도 이렇게 굴욕적인 정책은 펴지 않았다"며 "외부에서 우수한 교수와 연구진을 유치하려는 노력은커녕, 지역대학을 고사시키고 지역의료인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이런 황당무계한 정책을 펼치는 충북도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지역 의료진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난 2년동안 공공병원의 책무를 다해오다가 갑작스럽게 토사구팽을 당하는 느낌"이라며 충북대병원이 지난 12년간 도에서 받은 지원금이 40억원도 채 되지 않는 마당에 KAIST에는 1조 원대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지원한다고 하는 게 제 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충북의대 학생들은 "대입 성적을 보더라도 우리와 KAIST 학생들은 별반 차이가 없다"며 "지역인재를 키우고, 외부의 우수인재를 영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충북도가 자치단체의 책임은 다하지 않고, 선거철을 앞두고 지역 대학을 고사시키는 정책을 불쑥 추진하는데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충북의대의 한 학생은 "충북도의 독선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표한다"며 "이러한 중차대한 정책을 펼치려면 도민의 의사와 의료계의 총의를 모아야 하는데도,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결국 엄청난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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