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우리의 앞모습은 겉을 꾸미고 치장하며 끊임없이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돌아서 가는 뒷모습은 가식 없는 정직함이 보인다. 서로에게 지팡이가 되어 두 손 꼭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흰머리 연인들 모습은 애틋한 감동을 준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평생을 함께 살아 온 그들의 인생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친정아버지의 자상함과 부지런함은 그 시대 보통 남자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연탄 불 갈기, 대청마루 쓸고 닦기, 이른 아침쓰레기 차가 오면 대문 앞에서 기다리다 미화원 아저씨께 넘겨주시곤 했다. 우리 형제들을 씻기고 긴 수건을 돌돌 말아 머리카락을 탁탁 치며 말려 주시며 동동구르무를 발라 주시던 아버지. 이것들 아까워 어떻게 시집을 보낼까나 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어쩌다 어머니와 함께 딸네 집에 오셔서 새로운 청소도구가 눈에 띄면"이거 좋구나. 어디서 샀니?"관심을 보이시면 영락없이 친정집에 그 물건이 있는 것을 종종볼 수 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를 아주 많이 도와주시던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남편은 우리 또래 남자들 중 비교적 아내에게 잘하는 자상한 남자다.처음 마음 변치 않고 일편단심 한결같은 사랑으로 함께 한다. 아이들에게도 존경받는 모범적인 아빠임이 분명한데 웬만해서는 성이 차지 않는 이유가 친정아버지 때문일 게다. 남편 역할만으로도 고달플 텐데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백점 맞기 쉽지 않은 것을 어이하랴.

지난 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를 모시고 함께 살게 되었다. 졸지에 나는 엄마의 매니저가 되어야 했다. 엄마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을 뿐더러 부딪치려 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의 지나친 보살핌이 어쩌면 엄마를 자기주도적이지 못한 여자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고 했나보다. 자식 보다는 곁에 있는 남편이나 아내가 더욱 귀하다는 말 일 것이다. 지극한 아버지의 사랑은 마음을 쓸어내린다.

집안 내력일까. 가계에 흐르는 피 일까? 사위들의 아내 사랑은 친정아버지나 남편의 그것과는 또 다른 모양의 사랑이다. 핸드폰 첫 화면에 들어오는 숫자가 아내를 처음 만난 날부터 오늘이 며칠 째 인 것은 물론 기념일마다 그에 맞는 이벤트로 한 아름 감동을 준다. 그들은 말한다."돈은 천천히 벌어도 되지만'지금'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현재'에 투자한다"고. 시간을 쪼개 아내의 날을 만들어 아내를 기쁘게 해 준다. 밤을 새워 그들의 추억을 엮어 생일 선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물론 온통 아내와 가족 사랑의 스케줄이 우선이다. 일 보다는 가정 제일주의로 경쟁하듯 서로 사랑하는 젊은 그들을 보면 너무나 미덥고 예쁘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세상이 달라졌다. 가부장적으로 살기엔 남자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아내가 기쁘면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잘하게 된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행복 해 하니, 돌고 도는 선순환의 법칙이다.'살림'이란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거다.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내라면 그 살리는 일에 함께 동역하는 것이 남편이다. 친정아버지처럼 무조건 적인 사랑보다는 서로 세워가는 함께 하는 사랑 말이다. 봄 날 하늘 끝에서 노래하는 종달새 소리를 들은듯한데 어느새 저만치 여름이 오고 있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삶. 3대(三代)가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은 행복이 가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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